제3세계 빈민 돕고 싶다면 ‘키바’클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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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뉴욕 브루클린에 사는 애이셔 털먼(33)은 인터넷 서핑을 하다 우연히 ‘키바’ 사이트에 들렀다. 거기서 ‘털먼’이란 탄자니아 여성 상인이 돈을 빌리고 싶어하는 걸 알게 됐다. 자신과 성이 같은 데다 한 아이의 엄마라는 점에 마음이 끌려 선뜻 25달러(약 2만3000원)를 빌려 줬다. 얼마 후 전액을 돌려받은 그는 아이가 딸린 제3세계 여성을 골라 다시 대출해 줬다.

애이셔처럼 수많은 중산층 미국인이 키바(www.kiva.org)를 통해 아프리카 등 개도국 빈민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이 최근 보도했다. 키바는 마이크로 파이낸싱(저소득층에 대한 소액신용대출) 중개 사이트다. 노벨평화상 수상자(2006년)인 무하마드 유누스가 1980년대 초 방글라데시에서 그라민뱅크를 열어 농민들에게 소액 대출을 해준 이후 유사 업체가 여럿 생겼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일반인이 직접 돈을 빌려주는 길을 연 것은 키바가 처음이다.

지난해 9월 오프라 윈프리가 자신의 토크쇼에서 키바를 소개한 이후 참여자가 급증했다. 지금까지 21만1000건의 대출을 통해 총 1870만 달러(약 176억원)가 제3세계로 흘러갔다. 몰도바의 버섯 재배 농민, 토고의 중고 운동화 판매상, 에콰도르의 인터넷 카페업자 등 수많은 사람이 키바의 대출금으로 삶의 기반을 잡았다.

돈을 빌려 주겠다는 사람이 너무 많아지자 키바는 건당 대출액을 25달러로 제한했다. 돈을 떼일 염려가 거의 없는 대신(대출상환율 99.82%), 이자 수익을 기대할 순 없다. 돈을 빌려 가는 이들에게 평균 22%의 이자를 물리지만, 대부분 관련 수수료로 나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키바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자에 비할 수 없을 만큼 큰 정서적 만족을 얻기 때문에 돈이 상환되자마자 다시 대출에 나선다.

83명에게 돈을 빌려주고 있는 스티브 토머스(50·시카고)는 “제3세계를 잘살게 만드는 것이 장기적으로 볼 때 미국의 정치·경제에도 이득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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