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으며생각하며>14.천주교光州교구 성빈첸시오회 李化均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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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이 격언은 하나의 바람일 뿐이다.확실한 것은 사람은 죽어서 시체를 남긴다는 사실이다.햄릿 왕자가 고뇌를 중얼거린다.『사느냐,죽느냐,이것이 문제로다…죽는다는 것은 잠을 자는 것,잠을 자면 꿈을 꾸게 된다.아,이것이 괴롭도다.』 죽음에 있어 꿈을 꾸는 것보다 더 확실히 괴로워해야 할 것은 시체를 남긴다는 점이리라.꿈은 그것을 꾸는 사람에게만 괴롭다.시체는 죽은 사람 자신이 결코 처리할 수 없고 살아 있는 사람에게,그것도 대체로살았을 때는 낯도 모르던 남 에게 소렴(小殮),대렴(大殮),입관(入棺),운구(運柩),매장의 폐를 끼치고야 처리된다.사람의 마지막은 늘 이렇게 남에게 맡겨져 끝난다.
광주에 사는 천주교 신자이고「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회원인이화균(李和均)씨.소띠,올해 쉰아홉살.그는 바로 이러한 일을 맡는 남이다.그는 천주교 광주대교구 가톨릭장의운영위원회 회원이기도 하다.위원장은 사제가 맡고 있다.자신은『그 냥 우리 모든광주교구 천주교 교우 가운데서제일 낮은 종』이란다.이화균씨와의대담은 그의 말문을 떼게하기가 꽤나 어려웠다.
『우리 천주교에서는 자기가 하는 일을 남이 모르게 하는 것을으뜸으로 생각하거든요.또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도 있고.어쩌나.아무리 힘든 일을 해줘놓고도,아이고,내가 어디가서 이런저런 일을 했노라고 말을 못합 니다.않습니다.』신문기자한테 붙잡혔으니 무슨 말인가 해줘야 풀려나겠는데,해달라는 말을 다 하면 자랑이 될테고,이런 말을 자랑삼아 다 해줬다가는 자기가 나중에 천당가서 받게될 상금이 깎이게 될 것을걱정함이 분명하다.참으로 천국에 적합한 어린아이 같은 신자(信者)다. 마다하는 그를 억지로 끌고 음식점으로 갔다.광주에는 술 한병을 시키면 그 술값에 맞춰 썩 먹을만한 안주가 푸짐하게나오는 음식점이 있다.내가 먼저 얼른 잔을 비웠다.그가 가지고다니는 핸드폰과 삐삐가 자꾸 그를 찾는다.내쪽에서도 그렇지,이사람은 빨리 놓아줘야 할 사람이다.내가 빨리 마신 잔을 그에게금방 금방 돌리니 그 잔을 비운 그의 입이 비로소 차츰 제대로열린다.천주님,교회 안다니는 저 같은 사람에게 붙잡힌 그를 한번만 용서하소서.
『연도(煉禱)가 난 집에서 본당으로 연락하면 본당 연도회가 손이 안 돌아가거나 시신이 너무 험해 손을 쓰기 어려운 경우에는 우리한테 연락합니다.전화가 오면 제가 하는 첫 마디는 가서제가 다 해드리겠습니다.시신과 그 주위 모두를 그대로 놓아 두십시오라고 하는 겁니다.제가 그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었건 연도가 났다하면 그 즉시 달려갑니다.제가 빨리 안가면 그 사이에가족들은 매우 당황해합니다.그분들은 경험이 없으니까요.무조건 가서 제가 해드릴 일이 있지요.장 롱 치우고 책상 치우고부터 시작합니다.그 담에 소렴(小殮)을 합니다.소렴이란 사람이 막 죽으면 코.입.귀를 막아 주고 손.발을 묶는 것이지요.대개 사람이 죽으면 손.발이 쭉 늘어진다고 그러거든요.키가 1백75㎝이던 사람이 1백80㎝ 가 됩니다.그래서 발을 좀 반듯이 해서묶어드리고 하는 것이 소렴입니다.돌아가신 분이 아주 비대하다든지,간암이나 폐렴으로 돌아가시는 바람에 배에 복수가 찼다 면 탈지면을 커다랗게 뭉쳐 항문과 식도도 깊숙하게 잘 막아드려야 하고요.』 어떻게 해서,그리고 언제 이 험한 일을 시작했느냐고물었다. 『열아홉살 때 제가 남풍이 불어 돌아다니다가 서울에 있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받았습니다.고향 순천에 내려와서 장사를 지내는데 시신에서 분비물이 새어 나와 상여를 메는 동네 젊은 사람들 옷에 묻고 하더라고요.저 사람들이 저렇게 해주는데 나도 남의 일에 저렇게 해야되겠구나 느꼈죠.그때부터 남의 집에 연도가 나면 빠지지 않고 해드리고 그랬습니다.하다 보니 남이 안하는 일,보수 없는 일을 무엇이든지 좋아하게 되었지요.』 이화균씨가 맡는 시신은 한 해에 대략 2백50구쯤된다고 한다.보통은 한 초상집에 두번 들름으로써 일을 끝낸다.
어떤 경우는 대여섯번이나 들러야 하는 경우도 있다.
첫번째가 시간이 가장 많이 든다.두시간쯤이다.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내가 가장 놀란 것은 그의 얼굴이다.이런 궂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서 더러 보는 그런 살이 낀데가 조금도 없다는 정도가 아니라 어린애처럼 티 없이 맑다.
자식들도 있고 형제들도 있는 홀아비 노인이 단칸방에 세들어 혼자 살고 있다가 죽었다.며칠을 아무 기척이 없자 집주인이 열쇠 고치는 사람을 불러 문을 열고 보았더니 죽어 있었다.온 방에 시신에서 나온 물이 흥건하게 고여있었다.이화균 씨가 도착했을 때는 가족들이 먼저 와 방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바깥에서도냄새때문에 두꺼운 마스크를 낀채 시신의 흉칙한 모습이 무서워 벌벌 떨기만 하고 감히 쳐다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이런 부패한시체의 악취를 심하게 맡고 있으면 줄줄 코피가 흐른다고 한다.
『이건 얼른 얘기해서 변사거든요.경찰에 신고하고 검찰의 지휘를 받아야 매장할 수 있습니다.부검하러 대학병원에 가려고 제가그 시신을 억지로 관에 넣었는데 엄청난 애로를 겪었습니다.그 후 한 서너달이 지나 어떤 사람이 찾아와 고맙다 는 편지와 와이셔츠 티켓 한장을 줍디다.그 편지는 지금도 보관하고 있습니다. 또 너무 오래 앓아 누웠던 사람은 등에 감창이 나서 썩어꾸적꾸적하지요.그런 사람 시신수습을 나는 서슴지 않고 해 드립니다.「예수님 당신이 하시는 일을 내 손을 빌려서 당신 대신 합니다.」그 생각을 합니다.그러면 무서울 것도,더러 울 것도 하나 없어집니다.
저는 타고난,선택받은 은혜를 입은 사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런 일을 하도록 선택받은 사람은 많지않지요.또 제가 아무것도안 받고 봉사하는건 아닙니다.제가 다른 직업은 없고 이 일만 하니까 우리 교구에서 제게 먹고 살만큼 돈도 줘 요.
또 제가 온 몸에,손바닥 까지도 심한 무좀을 앓아 왔습니다.
밤에 잠을 못잘 정도로 고통을 받았지요.그런데 이 일을 하고 난 뒤에는 깨끗이 나아버렸습니다.사소한 일이라고 할지 모릅니다만,시신의 송장물이 약이돼 버린 모양이구나 생각도 하지만,하느님이 네가 어려운 일을 하니까,그런 손으로 어떻게 일을 보겠느냐,낫게해주마,그래서 나은 것 아니냐,그런 생각도 들어요.
제가 돌봐줄 사람 없는 집을 돌봐드리고 나오면 상주들이 문앞까지 나와 배웅을 합니다.저는 그 다음 그 사람들을 잊어버리지만 그 사람들은 저를 잊어버리지 않고 길에서라도 만나면 인사를합니다.밥 먹으로 가자,술 먹으로 가자,야단이지 요.그분들 맘이 그렇게 들게 되는가 봐요.그런 사례를 무턱 대고 받아들이면저는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이 되지요.그렇지만 보람을 느낍니다.제가 하는 일은 다른 사람이 아무리 좀 하고 싶어도 천성이 아니면 하기가 어렵겠다싶기도 합니다 .』 그가 자식들을 도시에서 가르치겠다고 시골에서 짓던 농삿일을 작파하고 광주로 올라 온 것은 서른네살 때였다.시골서 가지고 왔던 돈으로 집장사도 좀 하고 돈놀이도 하다가 부도를 만나 전부 날렸다.
『내가 지은 집 한번 들어가서 살아보지도 못하고 남에게 넘겨주어 빚을 갚았어요.돈이 한푼도 없어지니까 소외됩디다.하느님이날 안봐주는데 내가 왜 하느님 일 하느냐 싶었던 적도 있었어요.그러다가 더 열심히 교회 일 해보기로 맘을 고 쳐먹었어요.작년에는 큰 교통사고를 당해 죽을 고비를 겪었습니다.전대(全大-전남대학교)병원에서 두달만에 퇴원했는데 하루 쉬고 그 이튿날부터 다시 일을 시작했습니다.신부님들 수녀님들 교우님들 헤아릴 수없이 많은 분들이 제게 문병을 와주 셨어요.제가 무언데 이런호화로운 대접을 받습니까.남이 좀 하기 어렵다는 일을 하니까 그렇게 되는 것이다,생각해요.
***장례는 검소해야 누구를 꼭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하면 제 도움을 받아 고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도움을 청합니다.이러 이러한 사람인데 좀 도와 달라고.어느 정신지체아를 여기은성원(隱星院)에 수용시킨 일이 있습니다.시 사회과장한테 가서부탁했 습니다.은성원은 개신교에서 운영하는 기관인데 거기 가서도 부탁했습니다.다 잘 들어줬습니다.광주 대림동 천주교회 빈체시오회가 부모 노릇을 하기로 하고 간식비로 매월 10만원을 내고 있습니다.병이 나면 적십자 병원이 돌봐주게 돼 있■요 .』이화균씨는 다 장성한 4남매를 두고 있다.
『막내가 스물네살인데 서울에 있는 KAIST에서 지금 무슨과라든가,석사과정을 하고 있어요.
저는 여생을 제 힘을 다해서 남을 위해 살랍니다.저승 사자가오면 나는 이런 이런 삶을 살았소,천당으로 보내 주시오.이렇게자신 있게 말할 수있게 되려고 노력할랍니다.저승사자라고 하면 표현이 다르지만 옳은 일 한 사람은 천당 가고 나쁜 일 한 사람은 지옥에 가는 건 어느 종교나 똑같지요.가톨릭 신자 아닌 사람들도 우리 교우를 통해 도움을 청해 옵니다.그분들한테도 똑같이 봉사하지요.이렇게 모든 사람을 주인으로 받들고 살려고 하면 저 사람들이 이걸 뒤집어 놓으 려고 할 때도 있습니다.그러면 제가 그것을 또 바로 잡습니다.』 이화균씨가 헤어지면서 내게 한 말은 장례 사치(奢侈)는 옳은 일이 아니기 때문에 장례는 지금보다 검소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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