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勢재편-동교동계 강화.KT系 약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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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민주당 세력판도가 변하고 있다.분당위기까지 치닫던 파동의 결과다.내분봉합이후 과거의 분류방식은 더이상 통용되지 않는다.더구나 민주당은 8월에 당권경선을 한다.변화의 파도는 앞으로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우선 보이는 것이 주류 對 비주류라는 구도의 해체다.이 구도는 93년3월11일 전당대회이후 민주당의 골격이었다.승리한 이기택(李基澤)대표를 지지하던 측이 주류였다.물론 주력은 김대중(金大中)亞太평화재단이사장의 동교동계.다른 이름으 로는 내외연(內外硏)이다.여기에 이기택계를 더한 것이 주류였다.
김상현(金相賢)고문을 지지한 측은 비주류다.역시 당권경쟁자인정대철(鄭大哲)고문,그리고 김원기(金元基)최고위원과 개혁그룹이비주류로 분류됐다.양진영은 행동통일 속에 사안마다 대치하며 견제와 균형을 이뤄왔다.
이러한 기존질서의 균열은 주류내부에서 시작됐다.李대표는 독립을 위해 12.12기소투쟁을 시작했다.李대표가 당을 좌지우지하자 대주주인 동교동이 제동을 걸었다.「홀로서기」와 「기득권」이충돌하면서 주류가 갈라지자 그 영향은 즉각 비주 류에 파급됐다. 이기택대안(代案)부재론의 부재(不在)조짐에 경합자들은 동교동에 접근했다.주류의 「틈」은 이들에게는 기회였다.김원기최고위원과 정대철고문의 행보가 동교동계와 일치하기 시작했다.
주목할 것은 김상현고문의 변화였다.당내에서 가장 金이사장과 먼거리에 있다는 평가를 받던 金고문은 서서히 이동을 시작했다.
그는 기발한 수(手)를 동원했다.스스로는 동교동의 임시전당대회주장과 李대표의 정기전당대회주장을 동시에 요구했다 .그는 이렇게 등거리노선을 유지하다 李대표와 동교동의 관계가 회복불능이란판단이 서자 다음 단계로 옮겨갔다.정기전당대회주장을 철회한 것이다.동시에 동교동입장에서 李대표 설득에 나섰다.그의 對동교동접근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개혁그룹은 극(極)에서 극으로 움직였다.12.12기소투쟁에서는 李대표의 최대지원세력이었다.그러나 싸움이 당권투쟁으로 전환되자 동교동쪽에 섰다.처음에는 명분에,결국은 현실에 선 것이다.이 딜레마는 앞으로도 개혁그룹의 불안요소로 작■ 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내분봉합이후 민주당은 새로운 두그룹으로 갈라지고 있다.
범(汎)동교동계와 이기택계다.물론 공식적으로 중도를 표방하는 의원군(群)도 있다.李대표계가 아니면서 동교동계임을 「부인」하는 그룹이다.그러나 이들이 8월 전당대회 이후에도 이 기조를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한 민주당의원은 이유를 『마지막에는 호남표에 의지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해야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金敎俊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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