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장 3배 지하가 순식간에 ‘가스실’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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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일 오전 경기도 이천의 냉동창고에서 폭발과 함께 큰불이 나 김준수(32·전기설비 업체 한우기업 소속)씨를 포함해 냉동창고에서 일하던 40명이 숨졌다. 화재 당시 창고 안에는 57명이 있었다. 17명은 탈출에 성공했고, 이 중 10명은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으나 중태다.

 불은 이날 오전 10시45분쯤 이천시 호법면 유산리 냉동물류센터 ‘코리아2000’의 지하 1층 기계실에서 났다. 이어 주변에 흩어져 있던 우레탄폼 원료와 LP 가스통에서 10초 간격으로 세 번의 연쇄 폭발이 일어나 유독가스가 지하창고 전체로 퍼진 것으로 소방당국은 보고 있다.

 경기도 소방재난본부 최진종 본부장은 “며칠 전 작업으로 기름안개(유증기)가 지하공간에 남아 있는 상황에서 용접에 의해 불똥이 튀면서 불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크다”며 “오늘 용접 작업을 했다는 업체 관계자의 진술이 있었다”고 말했다. 다른 소방 관계자는 “불이 나자 기계실 옆에 보관 중이던 우레탄폼 원료 200L짜리 15통으로 순식간에 불이 옮겨 붙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불이 붙은 우레탄폼이 유독가스를 내뿜자 축구장(7140㎡, 그라운드 기준) 3배 크기(2만3338㎡)인 지하창고는 순식간에 암흑의 공간으로 변했다. 출입구를 겸한 배차 통로와 가까운 쪽에서 일하던 인부들은 급하게 몸을 피해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창고 안쪽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시꺼먼 연기가 뒤덮인 창고 안을 미로처럼 헤매다 유독가스에 질식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유독가스는 수십m까지 하늘로 치솟아 화재 현장 일대와 인근 지역이 검은 연기에 휩싸였다.

 몇몇 사망자는 휴대전화로 외부에 급하게 “살려 달라”며 구조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는 스프링클러가 있었지만 초기에 폭발로 망가져 작동하지 못했다고 한다.

 불이 나자 소방차 131대와 소방관 614명, 경찰 2개 중대와 교통기동대가 출동해 진화 및 구조작업을 벌였다. 그러나 창고 내부에 보관된 냉매 같은 화학물질 때문에 폭발이 계속되면서 네 시간 동안 현장에 진입하지 못해 피해가 컸다. 불은 이날 오후 6시30분쯤 꺼졌지만 자욱한 연기와 유독가스는 이날 밤늦게까지 뿜어져 나왔다.

 사고 현장에서 구조작업을 벌인 한 소방관은 “시신의 일부는 얼굴과 지문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그을렸다”고 전했다.

 불이 난 ㈜코리아2000 소유의 냉동창고는 지하 1층, 지상 2층(연면적 3만583㎡) 규모로 지난해 11월 5일 준공됐다. 12일 영업을 시작할 예정이었으며, 7일은 냉동설비에 냉매(프레온가스)를 집어넣는 마무리 공사를 하던 중이었다.

이천=정영진·천인성 기자

◆우레탄폼=내부에 기포 구멍이 많아 열전도율이 낮은 덕에 단열재나 흡음재로 많이 쓴다. 폴리올(polyol)과 이소시아네이트(isocyanate)라는 액체 상태의 두 화학물질을 섞고 여기에 발포제를 넣어서 만든다. 불에 잘 타는 성질이 있으며, 불이 붙으면 일산화탄소(CO)·시안화수소(HCN) 같은 각종 유독가스를 내뿜어 인체에 치명적인 해를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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