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해외칼럼

파키스탄의 핵 무기 보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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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9·11 테러는 이러한 우려를 악화시켰다. 미 정부는 공인받지 않은 인물이 손댈 수 있을 정도로 파키스탄 핵무기에 대한 통제가 느슨해질까 봐 걱정했다. 9·11 테러 이후 한동안 미 정부는 파키스탄이 핵 무기 관련 인물을 어떻게 관리하고, 무기의 무단 사용을 막을 수 있는 기술적 보호 시스템을 어떻게 운영해 왔는지 알고자 했다. 미 정부는 파키스탄의 핵무기를 통제하고 배치와 저장·이동 등 모든 연결고리의 안정을 꾀하는 데 힘썼다. 또 핵무기 실험실들이 암호나 승인 없이 기폭(起爆)할 수 없게 하는 미국의 PALs(permissive action links) 같은 것이 파키스탄에도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 했다.

파키스탄 군부는 미국의 의심에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다. 미국의 핵 쇼비니즘이 이런 의심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인도인은 98년 5월 핵무기 실험 성공 발표 후 유사한 경험을 했다. 미국은 인도인이 핵융합 반응이라고 선언한 일련의 실험 중 마지막 실험의 핵 방출에 대해 잘 믿지 않았다. 미국의 로스앨러모스 핵 연구소나 리버모어의 핵무기 계획자들은 이것이 부분적으로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뉴델리의 핵무기 전문가들은 이를 ‘백인 우월주의’로 보고 분개했다.

하지만 현재 파키스탄에 대한 걱정은 근거가 있다. 최근 리비아와 이란이 파키스탄의 우라늄 농축 기술에 대해 불법적으로 접근했고, 파키스탄 핵폭탄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A Q 칸 박사가 핵무기를 디자인해준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사실 정부가 전혀 모른 채 칸 박사가 수년간 국제적 핵 암거래 시장을 운영해 왔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미 국방부는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의 죽음 이후 파키스탄의 핵무기 안전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미 국방부는 가장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미 국방부는 반테러 동맹을 잃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그런 우려를 쉽게 표명할 수 없는 상황이다. 칸 박사의 암거래가 2004년 밝혀졌을 때도 미국은 파키스탄 정부의 지지를 잃지 않으려고 공개적으로 감시하지는 않았다.

어떤 점에서 미 국방부는 파키스탄의 군사적 핵에 대한 물리적 통제권을 넘겨받기 위해 준비해 왔다고 볼 수도 있다. 미국의 특별 조직이 그런 임무를 수행할 준비가 돼 있다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정말 걱정되는 것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정부와 군부·정보기관에 침투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솔직히 반미 성향의 종교적 극단주의는 파키스탄에서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다. 군사 정보기관의 고위급 관리조차 탈레반 대신 미국을 지지하는 대통령에게 반대했다.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로서 파키스탄은 불안하다. 파키스탄의 혼란은 전 세계가 그러한 치명적인 무기의 확산을 막는 데 적극적이어야 함을 보여준다. 냉전 종식 후 20년도 안 돼 전 세계는 남아시아·동북아시아·중동에서 핵무기 확산을 목도해 왔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벽장에서 핵무기를 꺼냈고, 이라크와 리비아는 국제조약을 거부하는 모습을 몇 차례 보였다. 이란도 이런 범주에 속한다고 봐야 한다. 북한은 핵무기를 만들기 위해 핵확산방지조약을 파기했다.

파키스탄의 현재와 미래의 불안정성을 생각할 때 국제 사회는 파키스탄이 사회적 질서와 국가 화합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파키스탄의 핵무기 보호 조치는 그 나라의 주권 문제만이 아니라 인류의 책임과 관련된 문제다.

선딩리 중국 푸단대 중국학연구소장
정리=백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