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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국가 어린이 후원 … 유산 나누기…기부문화 새 버전 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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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우리나라의 기부문화가 진화하고 있다. 연말연시와 재난이 발생할 때 현금으로 기부하는 형태가 여전히 주축을 이루고 있지만 그 방식이나 유형이 점차 다양해지고 있는 것이다. ▶해외 불우아동과 직접 결연해 꾸준히 돕는 소액 기부 ▶유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유산 나눔 ▶전문가들이 자신의 특기를 활용하는 재능 기부 같은 참신한 기부문화가 싹을 틔우고 있다.

 ◆기부문화 다양해져=김종성(44·주한미군 군무원)씨의 거실 벽엔 모잠비크·에티오피아·몽골·베트남·우간다 어린이 8명이 웃고 있는 사진이 걸려 있다. 김씨 어머니인 효순(66)씨부터 막내딸 다은(9)양까지 3대의 후원을 받는 아이들이다.

 김씨 가족은 아동 1명에게 매달 2만~3만원씩 모두 20만원을 후원하고 있다. 아내 박순녀(44)씨는 “애들 교육비와 대출금에 빠듯한 살림이지만 ‘후원을 줄이자’는 말을 꺼내면 딸들이 모두 ‘내 용돈을 줄이세요’ 하고 반대한다”고 웃었다.

 월드비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기부자로부터 후원을 받는 제3세계 아동은 20여만 명에 이른다. 딘 허시 월드비전 총재는 “100여 개 회원국 중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바뀐 곳은 한국과 대만뿐”이라고 말했다.“한국은 경제 성장뿐 아니라 기부로도 모범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고 사회에 기부하는 유산 나눔도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3월 고영(32·경영컨설턴트)씨는 변호사 입회 하에 ‘사망 시 전 재산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에 내겠다’는 유서를 썼다. 고씨는 “‘젊은 나이에 죽음을 대비하는 게 이상하다’는 말도 듣지만 공증한 유서를 볼 때마다 삶의 의욕이 솟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건국대 흉부외과 송명근(56) 교수 부부가 수년 전 200억원이 넘는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유언장을 쓴 사실이 공개됐다. 밤무대 악사 출신의 유길열(76)씨는 지난해 11월 세상을 뜨며 전 재산 1억3000만원을 연세대에 내놓았다. 전재구 유니세프 팀장은 “미국에선 유산 기부가 전체 모금액의 7.5%에 이른다”며 “우리나라에서도 유산 기부의 방법을 묻는 이가 갈수록 늘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직의 재능 기부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현금을 내는 대신 전문지식과 기술을 필요한 이들에게 전수하는 맞춤형 기부다. 지난해 3월부터 첼리스트 송영훈씨, 현민자 연세대 음대 명예교수 등 정상급 연주자 19명은 SK텔레콤의 주선으로 학생 45명에게 무보수 레슨을 시작했다. 소질은 있지만 가정 형편으로 음악가의 꿈을 포기하려던 아이들이다.

 14세 소녀에게 매주 바이올린을 지도하는 백주영(32) 서울대 교수는 “매주 실력이 느는 아이를 볼 때마다 흐뭇하다”고 웃었다. 한국디자인진흥원 소속 디자이너들은 재정이 열악한 풀뿌리 NGO(비영리민간단체)를 위해 로고 등을 무료 제작해주고 있다.

 ◆“1달러 기부는 19달러 효과”=강철희 연세대(사회복지) 교수는 “한국의 가족·학교·사회에서 기부의 사회적 효용을 교육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2006년 아서 브룩스(미국 시러큐스대) 교수는 “미국에선 1달러의 기부가 19달러의 수익을 창출한다”고 분석했다. 기부를 하면 빈곤층의 가계소득 증가,자선단체들의 사업 활성화→연관 산업 발전→사회 전체의 소득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생긴다는 것이다.

 1998년 미국 하버드 의대는 대가 없이 봉사에 참여한 이들에게서 면역 기능이 향상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테레사(1910~97) 수녀의 이름을 붙여 ‘테레사 효과’라고 명명했다. 곽금주 서울대(심리학) 교수는 “기부는 기쁨을 주는 동시에 면역을 강화하는 호르몬을 유발시킨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 국민은 아직 지속적인 나눔 실천엔 인색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기 기부보다는 자연재해나 연말연시에 맞춘 일회성 기부가 많다. 전체 모금액 중 60~70%가 연말연시(12∼1월)에 집중된다.

천인성·한은화·송지혜 기자 guch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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