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신용불량자 구제, 도덕적 해이 없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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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공약한 금융 소외계층의 구제 방안이 구체화되고 있다. 금융감독위원회는 신용불량자 등 금융권 이용에 제한을 받고 있는 신용 소외자에 대한 대규모 신용회복 방안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보고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현재 거론되고 있는 방안은 소액 신용불량자의 연체기록 말소와 공적자금을 동원한 채무 재조정이 골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생계형 소액 신용불량자들의 연체 기록을 없애 정상적인 금융거래의 길을 터주고, 고금리 사채를 이용하는 금융 소외계층에 대해서는 10조원가량의 신용회복기금을 조성해 낮은 금리의 정상 대출로 바꿔준다는 것이다.

새 정부가 경제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금융 소외계층에 큰 관심을 갖고 이들에게 지원의 손길을 내밀기로 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우리나라에는 신용등급이 낮아 정상적인 금융거래가 사실상 불가능한 이른바 금융 소외자(신용등급 7∼10등급)가 무려 720만 명에 이르고, 이 가운데 채무액이 500만원 미만인 생계형 신용불량자가 240만 명에 달한다.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사람이 빚에 쪼들려 경제활동을 제대로 못하는 사회를 건강하다고 할 수는 없다. 이명박 당선인은 이 같은 비정상적인 상황을 개선하지 않고는 경제가 활력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문제는 대규모 신용 구제에 따른 도덕적 해이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다.

우선 소액 신용불량자의 연체기록 말소는 단 한 번에 그치고, 앞으로 다시는 없어야 한다. 신용기록은 신용질서의 근본이고 이 질서가 무너지면 경제활동의 안정성이 깨진다. 신용 사면을 받는 모든 이에게 이번이 마지막 기회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공적자금을 동원한 채무 재조정도 마찬가지다. 빚을 탕감해주는 것이 아니라 상환 기간을 늘리고 이자 부담을 낮춰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그쳐야 한다. 빚 부담을 국민 세금으로 덜어주는 것이니만큼 채무 재조정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갚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는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확실히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