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원광법사서 이승만까지 … 한국인의 유학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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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꿈을 찾아 떠난 젊은이들
이강렬 지음, 황소자리, 296쪽, 1만2000원

유학 간 자식 뒷바라지에 허리가 휘는 건 요즘 기러기 아빠들 뿐이 아니다. 신라시대 6두품 관리였던 최견일은 자신의 아들만은 신분 사회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큰 결단을 내린다. 당나라로 유학 보내 그곳 과거에 급제한 뒤 금의환향하면 진골 못지않은 고위직에 진출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12세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서라벌에서 전라도 영산포까지 10여 일을 걸어 당나라 행 배에 태워 보내는 길, 그가 이른다. “10년 공부하여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면 나의 아들이라 하지 않을 것이다” 그 말을 가슴에 새겨 6년 만에 과거에 합격한 명민한 아들은 바로 ‘토황소격문’으로 유명한 대학자 최치원이었다.

유학 비용으로 연간 10조원이 쓰이고, 역대 유학생 숫자가 지난해 24만 명을 돌파했다 한다. 그 탓에 외화 낭비네 뭐네 유학망국론까지 등장하는 판이지만 저자는 예나 지금이나 선진 문물을 배우는 것 만큼 개인과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는 길도 없다고 강변한다. 기록상 한반도 최초의 유학생이었던 신라 원광법사부터 한국인으론 미국 대학에서 처음 박사학위를 받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우리네 유학사를 더듬어본 것도 그래서다.

양반 신분으로 막노동을 불사하고(서재필) 이국 땅에서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해주던 남편을 잃는 (박에스터)등 유학생 본인이나 가족이 만만치 않은 대가를 치러야 했으나그 열매 또한 풍성했다. 유학생활 11년 만에 귀국한 서재필은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독립협회를 결성했으며 배재학당에서 후학을 기르는 등 한국 근대사에서 독보적인 활약상을 보였다. 미국 볼티모어 여자의과대를 졸업한 뒤 한국 최초의 여자의사가 된 박에스터는 귀국 후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여성환자 1000여 명을 치료했고, 산간지방까지 다니며 무료 진료를 펼쳤다 한다.

월급쟁이 처지로 두 아이를 미국에 유학시킨 체험을 통해 『가난한 아빠, 미국에서 아이 공부시키기』란 책을 펴냈던 저자는 ‘확신범’이다. 시골서무리해가며 자식들 서울 유학을 시키셨던 부모님처럼 자신 역시 안락한 노후를 포기하고 자식 교육에 올인하는 게 옳은 일이라 여기는 것이다. 저자에 동의하고 않고를 떠나 고금의 유학 행태를 비교해보는 것 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흥미롭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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