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구름의 역사] 9. 청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나는 증평 양조장의 송경섭(宋景燮) 선생을 찾았다. 내가 청주상고에 합격했을 때 입학금을 대준 분이다.

"이 사람아, 용케 살아서 돌아왔네. 자네 어머니가 얼마나 걱정하셨는지. 사람들이 다 울었어!"

나는 모교인 청안(淸安)학교에 갔다. 연질(延瓆) 선생님은 나를 안고 그저 쓰다듬어 주셨다. 1천년 묵은 은행나무를 우러러보았다. 뭉툭한 아랫도리에 큰 구멍도 생겼지만 무수한 가지들이 하늘 가득히 뻗어 있었다. 은행도 많이 열려 전체가 금덩어리 같았다.

이 곳에서 나는 태어났다. 임술년(1922년) 대보름날부터 읍내에는 줄다리기 "영차" 소리가 요란했다. 어머니는 나를 낳을 때도 그 소리를 들으셨다고 했다.

내가 자란 마을을 살펴보았다. 양지 바른 곳에 자리잡은 축산조합. 그 곳엔 수의사 가와지마 요시다카(川島義孝)가 있었다. 그는 이따금 기웃거리던 나를 손짓으로 불러 들여 생과자도 주고 스키야키와 같은 일본 요리도 해주었다. 한겨울 밤 고다쓰(난방용 화로)에 발을 넣고 오순도순 얘기하다 잠든 나를 그대로 두거나 매달 오는'킹구'라는 잡지를 내가 먼저 읽어도 그냥 내버려 두던 사람이었다. 일본말의 발음과 억양을 바로잡아주던 친절한 그 사람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다.

이번엔 청주다. 모교 청주상고에서는 나를 크게 환영해 주었다. 은사인 최종성.은종윤(殷鍾尹) 선생은 물론 학생들도 다정하게 맞아주었다.

수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시끄러운 1학년 어느 반의 담임을 맡으라고 했다. 내가 들어간 첫 시간, 경례를 한 아이들이 킥킥거렸다. 나는 말없이 지켜보고만 있었다. 이윽고 조용해졌다.

"이제 얘기들 다 끝났나? 한 사람이라도 수업 중에 딴 얘기를 하면 나는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릴 거예요. 철칙이야! 모두 알았나!"

"넷"하는 대답이 힘찼다.

"그런데 햇빛이 안 들어오는 이 쪽은 좀 춥겠다. 모두 창가로 책상을 붙여!"

덜거덕 소리도 한순간이었다. 가까이 붙어 앉았는데도 말들이 없다. 착하다.

"내가 일본에서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생겼는가. 바로 이 학교에서 생긴거야. 나는 수업시간에는 선생님 눈을 똑바로 쳐다봤어.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들었어. 수업이 끝나고 나면 놀았어. 해가 질 때까지 교내 테니스 코트에서 운동하고 말이야. 정신일도 하사불성! 집중해요!"

영어 시험이 있었다. 농업학교를 다니다 온 학생이 ABC도 모른다고 썼다. 다음 학기엔 꼭 50점은 받겠다고 했다. 나는 생각 끝에 60점을 줬다. 그가 뒷날 통역이 됐다는 얘기를 듣고 웃으며 무릎을 쳤다. 그게 교육이라는 것인가.

한운사 작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