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칼럼>자연보호와 中靑山莊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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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지난해 11월 하순 남산의 하늘선을 20여년 독점적으로 지배하고 있던 외인아파트가 굉음과 함께 사라졌다.
누가 남산의 그 거대하고 흉칙한 조형물을 사라지게 했는가.폭파 기술자인가,아니면 행정당국인가.
결론부터 얘기한다면 남산이 자신의 모습과 생명을 되찾으려는 보이지 않는힘 때문이다.
나는 당시 말없는 산이 큰 건물을 송두리째 날려버리는가 하면「나는 살아 있다」고 온세상을 향해 포효하는 불가사의를 목격했다. 부드러운 곡선의 산허리를 예각으로 자르며 들어선 외인아파트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누구든 답답함을 느꼈다.시간이 지나면서사람들은 그 답답함이 자신의 것이라기보다 「남산의 것」임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느낀 답답함과 애처로움은 그 사각의 건조물이 남산이라는 한국산과 전혀 조화를 이룰 수 없었던 데 기인한다.
우리의 전통적인 건축미학은 자연과의 조화를 최고의 가치로 삼아왔다. 그런 미학을 거슬러 폭력적으로 들어선 외인아파트였기에하늘선을 잠식한 문제이상의 심각한 사회심리학적 폐해를 끼쳐온 것이다. 무자비하게 들어선 그 건물에 대한 분노와 불만이 그 뒤에 가려진 산에 대한 애정과 동정심으로 전환되고 증폭된 결과,건설행정 당국은 그 아파트밑에 폭약을 설치하지 않을 수 없게된 것이다.
그러니까 만약 그 건물이 남산의 산세와 어느 정도 조화를 이뤄 산이 허용할 수 있었다면 그 아파트는 아직도 건재할 수 있었을 것이다.이처럼 산은 그 산기슭에 세워지는 인공건조물을 스스로 관리하는 초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나는 그 외인아파트가 굉음과 함게 무너져내리는 광경을 TV중계로 지켜보면서 남산 외인아파트뿐만 아니라 설악산 대청봉 산마루에 지어진 중청산장도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산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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