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낭패기>상해의 가라오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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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하고 싶은 것,동경하는 것은 「사랑과여행」이라고 한다.이중에서도 여행이란 다른 지방,다른 나라 사람들의 생활.문화.역사를 체험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해준다.
안내(가이드)업무를 하면서 세계 곳곳을 다녔고 나름대로 꼼꼼하게 일처리를 했다고 자부해 왔다.
그러나 지난해 말 상하이(上海)에서 겪었던 해프닝을 생각하면아직도 불쾌한 감정을 숨길 수 없고 동행했던 분들께 미안하기 이를데 없다.
필자를 포함한 일행 4명은 14박 15일간의 백두산 트레킹을마치고 귀국전 상하이에서 하루를 묵었다.
귀국 하루전인데다 연말이고 해서 우리는 중국에서 망년회나 하자며 적당한 술집을 찾아 나섰다.
「어디서 한 잔 할까」 하고 숙소인 갤럭시호텔 로비를 걸어나오고 있는데 2명의 남자가 『혹시 한국인 아니냐』며 『한국인이잘 가는 싸고좋은 가라오케집이 있다』고 접근해 왔다.
짧은 영어를 사용하면서 자신들은 중국에 공부하러온 일본인이라고 했다.
커피숍에서 얘기를 계속 하면서 크게 내키지는 않았지만 호텔에서 택시로 2분거리밖에 안된다는 말에 다소 안심했다.
1인당 가격은 인민폐 2백원(우리돈 2만원).1인당 술 3병과 노래를 마음대로 부를 수 있고 여자도 나온다고 하니 적당한가격이라고 생각했다.또 장정이 4명이나 되는데 술집에 가서 의심이 나면 몸싸움을 해서라도 돌아오면 되겠지 하 는 객기도 발동했다. 우리는 이들 일본인 가이드 2명과 함께 택시 2대에 나눠탔다.2분이란 시간이 꽤 길게 느껴지면서 약간 의심이 갔다.지형을 잘 알아두자는 마음에 주위 간판들을 유심히 보기도 했지만 20여분뒤 술집에 닿은 뒤에는 기왕 온 곳이니 그냥 마시자는데 의견의 일치를 봤다.
가라오케의 한 룸에 안내돼 재미있게 술판을 끝내고 계산서를 받는 순간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계산서에는 우리가 예상했던 가격의 10배나 되는 금액이 적혀 있었다.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술집 주인을 부르자 갑자기 15명의 낯선 사내들이 룸으로 우르르 들이닥쳤다.
이들은 일어서려는 우리를 밀쳐 쓰러뜨리며『술값을 안내느냐』며윽박질렀다.
우리가 완강하게 버티자 험상궂게 생긴 사내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여기는 한국이 아니다.상하이다』는 말과 함께 손으로 목을 베는 흉내를 냈다.강하게 나가야 할 지,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해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중국을 벌써 여덟번이나 다녀왔고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하던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그러나 일행들의 안전에 책임이 있는 필자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결국 주머니와 지갑에 있는 돈을 몽땅 털리는 수모를 겪었다. 우리 일행은 호텔로 돌아오면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왜 그런 일을 당했을까.지금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귀국 마지막 밤이라는 사실이 우리의 긴장을 풀리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 과거부터 국제도시로 커온 상하이를 중국의 여타 도시와 똑같이 생각해 우습게 봤던 것도 낭패의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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