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걸프 증후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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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베트남戰에서 패배한 후 미국(美國)은「노 모어 베트남(더이상베트남은 없다)」을 대외정책의 모토로 삼았다.
미국 군인들은 지금도 베트남전쟁은 전선(前線)이 아니라 미국의 안방에서 진 전쟁이라고 생각한다.소위 TV 유죄론(有罪論)이다. TV에 무제한에 가까운 취재자유를 허용,전쟁내용이 사실그대로 본국에 전해져 반전(反戰)무드가 고조됐으 며 그 결과 전쟁에 패했다는 것이다.미국은 그 후 그레나다와 파나마침공에서언론에 대해 철저한 통제를 실시했으며,여기서 얻은 경험을 걸프戰에 썼다.
걸프전은 「뉴스 미디어와의 전쟁」이었다.미군은 90년 8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직후부터 미디어와 전쟁을 시작했다.그들은 미디어의 현장 접근을 철저히 통제.차단하는 한편 전쟁의 이미지 조작을 위해 미디어를 이용했다.
걸프전으로부터 세계가 얻은 이미지는 하이테크무기 전쟁,후세인이라는 사탄을 쳐부수는 정의로운 전쟁이었다.TV화면에 나타난 스마트彈.패트리어트 미사일 등 첨단무기의 위력은 마치 비디오 게임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했으며,전쟁은 더 이상 더러운일이 아니라는 환상을 심어줬다.
그러나 후에 밝혀진 사실들은 걸프전이 스마트하지도,정의롭지도않은 전쟁이었음을 알려준다.다국적군이 사용한 폭탄.미사일 8만8천5백t은 히로시마 원자폭탄 5개에 해당하는 파괴력이다.이 가운데 불과 7%만이 첨단무기였으며,발사된 무기의 70%는 목표를 벗어났다.
걸프전을 미국의 전쟁범죄로 규정,뉴욕에 「국제전쟁범죄법정」을열었던 램지 클라크 前미국법무장관은 다국적군의 무차별 공격으로이라크 민간인 10만~15만명이 사망하고,상하수도.발전소.병원등 非군사시설이 대대적으로 파괴당했으며,인구 의 3분의1 가까운 5백만명이 집을 잃었다고 고발했다.다국적군 인명피해는 1백50명에 불과했다.
미국 재향군인 2천명은 최근 자신들이 걸프전 당시 이라크의 화학무기에 노출돼 현재 알 수 없는 병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이유로 과거 이라크의 화학무기 제조를 지원한 서방기업들을 상대로10억달러 손해배상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걸프전 승리라는 화려함에 가려졌던 어두운 면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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