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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인터뷰]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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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정부의 장차관을 포함한 고위직과 공기업의 임명권자는 대통령이다. 그러나 후보들을 물색하고 각 부처 산하 기관장 자리 까지에 합당한 인물을 골라내는 정찬용(鄭燦龍·54) 청와대 인사수석의 권한은 대통령보다 더 막중하다. 그래서 그에게 줄을 대려는 정·관·민의 온갖 움직임들이 집요하고 소문도 무성하다.정 수석이 언론의 추적을 받는 이유도 그때문이다.

그는 늘 언론을 피해간다. 불필요한 자리에는 아예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재경부를 포함한 주요 부서의 고위직 인사들이 산하기관장을 돌아가면서 차지하는 인사 독점과 담합을 이번에는 반드시 고치겠다고 벼르고 있다.만만치 않는 관가의 저항이 어떤식으로 표출될지 주목된다.

24일 발매되는 월간 포브스 코리아 3월호(중앙일보사 발행)가 창간 1주년을 맞아 정 수석과 가진 특별 인터뷰 내용을 요약해 게재한다. 이 인터뷰는 지난 11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이뤄졌다.[편집자]

-요즘 인사가 많아 무척 바쁘겠다.

"아따, 뭔 일이 끝도 없이 생기네요잉~. 나가 일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인디-. 일을 만들다 보니 막 늘어나네요, 허허."

-만들어 벌이는 일이란.

"요즘 전국의 고등학교 가운데 20개를 뽑아 그 학교 동문들을 만나고 있다. 학교마다 50세 안팎의 동문 가운데 열댓명을 추리고 재계와 관계.언론계.학계 등의 다양한 직군으로 나눠 이 사람들을 격주에 한번씩 만난다. 의견도 듣고 자문도 하고, 필요에 따라 (정부 입장을)이해시키기도 한다. 식사를 하면서 소주도 얼큰하게 곁들인다. 얼마 전에 다섯번째 자리를 가졌다. 경복고.마산고.제물포고.오현고 등을 나온 사람들도 만났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무렵 장관을 한번 뽑으면 임기가 끝날 때까지 같이 가겠다고 밝혔는데 벌써 두 차례나 개각이 이뤄진 이유는 무엇인가.

"두 가지 배경이 있다. 먼저 상황이 워낙 심각했다. 그래서 변한 거다. 여소야대의 국회는 정부의 발목을 잡는 비생산적인 일을 거듭했다. 김두관 전 장관은 국회에서 해임됐지 않은가. 또 정치개혁이란 화두를 내세우다 보니 불가피하게 물러난 사람도 있다. 대통령도 물러날 생각이 있다고까지 했는데 장관이 자리에 연연하면 되겠나."

-장관 교체는 자질이나 능력과 관련이 있나.

"경우에 따라 다르다. 자질보단 오히려 '관(官)이 정하고 민(民)은 따른다'라는 공무원 사회의 타성이 문제다. 고자세의 공무원들이 장관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했다. 윤덕홍 전 교육부총리와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尹부총리는 상당히 훌륭한 분인데, 첫 스텝을 잘못 밟아 낙마했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이 우리 교육 문제의 본질이 아닌데 그 때문에 박자가 어긋나 끝내 추스르지 못했다. 교육부에서도 민의를 수렴하고 설득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노력이 부족했다. 부안 원전센터 문제로 물러난 尹장관도 관의 구태 탓에 업무 수행에 차질이 있었다. 화물연대 운송거부로 홍역을 치른 건교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뭘 궁리하고 대안을 만들어 해결하는 맛은 없고…."

-총선이 끝난 뒤 자리 변동이 또 있나.

"4.15 총선이 끝나면 소폭의 개각이 있을 것이다. (정부는) 새로운 국회와 관계를 모색할 것이다. (장관 임기 약속은) 이제 다시 카운트 해달라."

-참여정부 내부에서도 의견조정이 어긋나곤 했는데, 새로운 인사 바람을 일으켰다고 생각하나.

"옛 정부에서는 밀실.정실.측근 인사 등이 판을 쳤지만 참여정부 들어서는 이를 가능한 한 없애려고 했다. 군대만 봐도 많이 달라졌다. 내가 어릴 때는 진급을 앞둔 대위나 소령.중령 등의 부인이 상관 집에서 식모살이까지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여러 인사제도에는 개선해야 할 문제가 있지 않나.

"물론 있다. 예를 들어 고위직 공모제도에 허점이 있다. 공모를 하니 60~70점짜리 후보는 많이 오는데 1백점짜리는 드물더라."

-왜 1백점짜리는 잘 오지 않는가.

"누구나 인정하는 1백점짜리 사람은 모셔가겠다 해도 쉽게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더라. 사실 그런 사람이라면 누가 귀찮게 서류 접수까지 하면서 오겠나."

-인재가 오지 않으면 낭패 아닌가.

"아무래도 공모만으로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대안으로 '심마니'라는 제도를 만들었다. '산삼(인재)이 있으면 딱 찍겠다'는 뜻에서 심마니라고 이름 붙였다. 낙하산이라고 비난하고 떠들어도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심마니인가.

"인사 담당자나 보좌진이 돕겠지만 결국 심마니는 대통령이다."

-지금도 '끼리끼리 코드 인사'가 많다는 비난이 있는데 그리되면 더 심해질 수도 있지 않나.

"참여정부는 '국리민복(國利民福) 코드'에 따라 사람을 써왔다. 이 원칙에 따르면 모든 사람이 영입 대상이다. 한번 따져보자. (지난해 참여정부 첫 인사 때)장관 9명이 전.현직 장.차관이었다. 차관은 전원 관료 출신이었다. 지난 대선에서 전직 고위관료가 모두 盧대통령을 지지했을 것 같은가. 그래도 국리민복이라는 원칙에 맞으면 기용했다. 한승주 주미 대사나 오명 과학기술부 장관도 모두 그런 케이스다."

-이창동.강금실 장관 등은 조금 다른 경우 아닌가.

"물론 그렇다. 盧대통령의 인사 원칙을 관통했던 정치적 경험과 철학 등 정체성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뽑은 이른바 '코드 인사'였다. 그러나 이런 인사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우리 사회는 온갖 문제로 비틀려 있다. 갈비뼈 하나 부러지는 것은 큰 문제가 없지만 척추가 틀어져 있다면 심각한 것 아닌가. 이걸 바로잡고 대통령의 정치철학을 이식할 첨병이 필요했다."

-공직사회의 뒤틀린 관행과 타성을 어떻게 깨나가고 있나.

"정부 중앙부처 22개 국장 자리의 인사교류를 시도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2년 후인 2006년부터는 이미 예고된 고위 공무원 풀(pool)제도가 도입된다. 그렇게 되면 국장급 이상에서 다른 부처로의 이동이 더욱 확대된다. 또 3, 4, 5급 공무원을 대상으로 중앙과 지방의 교류도 활성화할 것이다."

-공무원들의 반응이 어떻다고 보는가.

"내가 재경부 국장인데 감히 어디로… 라는 저항도 없진 않았지만 대통령이 불러 식사 대접도 하고 당신들이 고위 공무원 풀제 1기라고 말하니 대체로 수긍하더라. 앞으로 여러 부처, 중앙과 지방 부처, 그리고 민간 부문 등을 두루 경험한 사람이 장.차관으로 기용될 것이다. 사실상 '친정' 개념도 희박해져 특정 부처의 '공무원 시장' 독점 현상도 사라질 것이다."

-공무원들이 퇴임 후 공기업 사장 자리 등을 독점한다는 비판이 또 일고 있는데.

"사실 오늘도 그 회의를 하다 왔는데 결론을 못 내렸다. 일단은 충원 채널을 다양화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면 자연히 관의 독점적 지위가 약화될 것 아니겠나. 한두번은 몰라도 돌아가며 서너번씩이나 자리를 독점하는 것은 참 문제다. 산하 단체장이나 협회장, 그리고 금융기관장 등을 싹쓸이하다시피 하는 재경부 출신 관료의 낙하산식 인사를 규제할 계획이다. 재경부를 공격한다고 모피아(재경부 출신들이 산하 기관을 장악하는 것을 마피아에 빗댄 표현)들이 난리더라."

-다른 보완책은 없나.

"왜 없겠나. 54개 중앙 행정기관 가운데 50개 기관에서 활용하고 있는 다면평가제도 또한 수술 대상이다. 98%에 이르는 공무원들이 다면평가제를 수용하고 있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부처 내에서 영역.지역별 이기주의가 아직 남아 있다. 그러다 보니 담합이 이뤄진다. 또 인기투표식으로 흐르는 경향도 없잖아 있다. 앞으로 담합할 수 없도록 갑자기 평가자를 구성한다거나 별도의 공간에 모아 로비를 받지 않도록 할 생각이다. 하위직을 넣어서 (평가 집단을)구성하는 방법도 고려하고 있다."

-그렇더라도 이른바 '마당발'들이 업무 능력과 관계없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지 않나.

"중앙인사위원회에서 정부인사정책지원시스템(PPSS)을 마련하고 있다. 일은 신통찮은데 마당발이라서 승승장구하는 사람을 걸러내는 장치다. 인사 파일에 평가 대상자가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성과를 냈으며, 실패한 원인은 무엇인지 등을 자세히 담는다. 이 시스템을 보완하는 데 민간 기업의 노하우를 많이 참고하고 있다. 어떤 회사의 경우 이익뿐만 아니라 부하 직원을 얼마나 잘 뽑았고, 얼마나 잘 교육시켰다 등도 중시하더라."

-앞으로 기업에서 많이 배운다는 뜻인가.

"교육 부문에서는 특히 그렇다. 어제 지방교육원장과 행정관리국장 등이 민간 기업의 교육장에 다녀왔다. 기업들은 이런 건물에서 이렇게 교육하는구나 등을 보고 왔다. 나도 인사 수석실 직원들에게 잭 웰치의 책을 읽도록 하고 있다. 인사관리를 어떻게 했기에 제너럴 일렉트릭(GE)에서 숱한 인재를 배출했는지 등을 배우라는 뜻에서다."

-민간 기업에 대한 채널은 얼마나 열어두고 있나.

"부처 간, 중앙과 지방 간 인사교류 못지않게 민.관 교류도 대단히 중요하다. 지금까지는 간헐적으로 기업의 CEO들을 만나 왔지만 앞으로는 더욱 많은 사람과 접촉할 계획이다. 특히 진대제 정통부 장관의 경우처럼 민간 기업의 CEO를 과감히 정부 부처에 데려올 것이다."

-그렇게 하려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정부 조직에도 하루 빨리 경영 마인드가 뿌리내려야 한다. 기업에서는 조직 구성부터 다르지 않나. 재량권도 많고 파격적 발탁도 흔한 일이다. 각 부처도 '통예산 통조직'으로 바꿔야 한다. 그 안에서 국을 짜든, 팀을 짜든 알아서 효율적으로 운영하면 되는 거 아니겠나."

-선진형 인사관리 체제가 자리를 잡으려면 그 외에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나.

"평가 시스템부터 달라져야 한다. 제대로 고과를 매기고 승진.전보시켜야 한다. 감사원장에 행정관료 출신의 전윤철 전 장관을 기용한 것도 평가를 강화하려는 포석이다. 감사원의 임무를 적발에서 평가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올해는 50대 50 비율로 가겠지만 내년부터는 평가 비율을 더 끌어올릴 생각이다."

-퇴임 고위 공무원의 활용 방안은.

"대기명령을 받고 기다리는 노련한 대사들이나 영관급 군 퇴역자, 퇴임 고위 공무원들이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묘안도 찾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임기제인 공기업 사장 인사 이야기가 나와서 의아해 하는 여론도 있는데.

"고민 중이다. 그러나 (참여정부 출범) 1년이 됐으니 어떤 식으로든 평가를 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임기를 존중하겠지만 보장하지는 않는다. 업무 능률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신인도 등도 따진다. 2월 말까지 세부 검토가 끝날 것이다."

-특정 정치인이 공기업으로 갈 수도 있나.

"감사의 경우 경영 능력보다는 견제 능력이 중요하다. 정치인 출신이 갈 수도 있다. 또 개혁이 필요한 곳에는 개혁 의지가 분명하다면 전문성이 좀 부족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마사회는 과거에 복마전 같은 곳 아닌가. 한때 목사님을 보내려고도 했다. 결국 본인이 거절했지만…."

정리=남승률 포브스 코리아 기자, 사진=최재영 기자

*** 정찬용 수석은…

정찬용 인사수석은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 경남 거창과 광주에서 20여년간 YMCA 활동을 한 시민운동가다. 서울대 재학 시절 민청학련 사건 때문에 투옥됐다. 출옥 후 고(故) 전영창 거창고 교장이 교원 자격증도 없던 그를 교사로 임명했다. 2000년 4월 총선 때는 광주YMCA 사무총장으로 낙천.낙선 운동을 주도했고,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는 막후에서 盧당선자를 도와 광주를 노풍(盧風)의 진원지로 만드는 데 역할을 했다. 지역편중.낙하산 인사 등의 잡음이 줄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남 영암 출생▶광주일고.서울대 언어학과▶거창고 교사▶광주YMCA 사무총장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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