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땅 규제 확 풀되 묶을 건 더 엄하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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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가 토지 관련 규제를 대폭 풀기로 했다.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토지에 대한 규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해 6월까지 밑그림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옳은 방향이다. 인구가 늘고 경제 규모가 커지면 토지에 대한 수요 또한 증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난마처럼 얽히고 설킨 규제 때문에 가뜩이나 부족한 토지 공급이 더욱 제약을 받고 있다. 그 결과 땅값은 급등하고, 이로 인해 기업은 해외로 빠져나가고 부동산 투기로 서민은 고통받고 있다. 고(高)지가는 우리 경제의 고비용 구조와 국가경쟁력 약화, 그리고 노사 갈등의 주요 요인으로 지적돼 왔다. 땅 관련 법률이 1백12개나 되고, 이에 따라 지정되는 지역.지구가 2백98개에 이른다니 얼마나 복잡한지 말이 안 나올 지경이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땅 규제를 풀고 단순화하겠다는 새 경제팀의 방향 설정은 시의적절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시도가 자칫 심각한 부동산 투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총선을 앞두고 중앙.지방 정부가 규제 완화 및 개발 계획을 쏟아내는 바람에 땅값이 크게 들썩이고 있다. 시중에 돈은 엄청나게 풀린 반면 투기를 잡을 정부의 행정력은 극히 제한적이다. 이런 판에 투기에 대한 선(先)대책 없이 규제만 풀 경우 온 국토가 투기장화하고, 서민의 내집 장만과 기업의 산업용지 마련을 더욱 어렵게 한다.

불필요한 규제는 푸는 대신 꼭 지켜야 할 규제나 보존해야 할 땅에 대해서는 더욱 철저한 단속과 관리가 있어야 한다. 특히 규제 완화가 난개발이나 환경파괴, 교통난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마스터 플랜이 필요하다.

이런 부작용에 대한 종합적인 대비책 없이 막연히 '규제를 없애야 한다'는 원칙론에서 일을 벌였다간 감당하지 못할 사태가 벌어질 수 있음을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건설교통부 등 이해관계가 걸린 부처나 지자체들도 '내 밥그릇'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국가 장래를 위해 바람직한 결론이 도출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