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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둣국 한 그릇의 추억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2호 27면

겨울이 되면 만두가 그립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하루 종일 엄청난 만두를 만들어 재어 놓고 겨울 내내 만둣국을 끓여 먹었다. 떡국에도 만두가 빠지지 않았다.

김태경,정한진의 음식수다

“이제는 만두를 만드는 풍경도 사라진 지 오래죠. 사다 먹으니까요. 어릴 적에는 만두를 만든다고 하면 신이 났고 많이 만들어야 많이 먹는다는 생각에 힘든 줄도 몰랐죠. 만두피도 직접 밀어서 만들 때였죠. 갓 빚은 만두를 쪄서 먹는 맛을 어찌 잊을 수 있겠어요.”

“편리하다는 게 몸과 마음에 새겨진 추억을 갉아먹지. 나도 만둣국 한 그릇을 다 비우고 나서도 밥상에서 쉬이 물러나지 못한 적이 수없이 많아. 넉넉지 않았던 시절 별미 중의 별미였잖아.”

“겨울에 갑자기 친지들이 집에 찾아오는 일이 있으면 빠르고 쉽게 대접할 수 있던 게 만둣국이라 만두를 많이 만들어 두었죠. 그래서 누군가 오면 은근히 만둣국 한 그릇을 기대하곤 했어요.”

우리나라 문헌상으로 처음 만두가 등장하는 것은 잘 알고 있듯 고려가요 ‘쌍화점’에서 회회아비가 팔던 ‘쌍화’다. 비록 당시의 만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몰라도 만두 가게까지 있었다면 상당히 알려진 음식이었을 것이다. 조선시대에 오면 ‘상화’로 불리는데 17세기 조리법을 보면 밀가루 반죽을 할 때 밑술로 반죽해 발효시켜 소를 넣고 빚었다고 한다.

“오늘날 찐만두와 같은 형태지.”

“요즘에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이전에는 커다란 무쇠 솥에서 쪄서 낸 찐만두와 팥을 넣은 찐빵을 파는 가게가 많았잖아요. 까까머리 남학생과 두 갈래로 머리를 땋은 여학생이 만날 수 있는 합법적인 공간이었고요.”

“너, 만두를 좋아하는 이유가 따로 있었구나!”

“아, 집에서 만드는 만두랑 이 만두는 다르잖아요.”

18세기에 들어서면 궁중에서는 상화라는 이름이 사라지고 만두란 명칭이 뒤를 잇는다. 그러면서 발효된 만두는 사라지고 발효시키지 않은 만두가 등장한다. 우리와 달리 중국에서는 만두라 하면 속이 없는 찐빵을 가리킨다. 중국집에서 주는 ‘꽃빵(花卷)’도 일종의 만두다. 소를 넣은 것은 포자(包子) 또는 교자(餃子)라 하는데, 둘을 구분하기 힘들지만 일반적으로 둥근 모양을 한 것이 포자고, 길쭉한 모양을 한 것이 교자다. 그러니까 찐만두는 포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밀가루가 귀한 예전에는 메밀가루로도 만두를 만들었어. 꿩고기를 넣은 메밀만두를 생치만두라고 하지. 만두피를 생선·쇠고기·동과 등으로 하면 어만두·육만두·동아만두라고 하고. 작은 만두 여럿을 큰 만두피에 싸서 만드는 대만두와 같은 독특한 만두도 있었고. 이처럼 소·모양·만두피에 따라 다양한 만두가 있었는데, 지금은 몇 가지만 맛볼 수 있는 게 아쉬워.”

“손바닥만한 평양만두가 있잖아요. 좀 투박해 보이기는 하지만 속이 푸짐해서 넉넉함이 느껴져요. 김치 대신 배추로 소를 넣어 담백하면서 구수한 만두에 양지머리 육수가 배어들었을 때 한입 베어물면 만두피는 쫀득하고 만두 속은 촉촉한 만둣국이 그만이잖아요.”

평양냉면 집들의 만두도 맛있지만 평양만두를 전문으로 하는 서울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 건너편 시장 골목에 있는 ‘만두집’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에 있는 ‘평안도만두집’의 만둣국은 많은 사람의 입맛을 사로잡을 만하다.


맛있는 것 먹기를 낙으로 삼는 대학 미학과 선후배 김태경(이론과실천 대표)ㆍ정한진(요리사)씨가 미학(美學) 대신 미식(美食)을 탐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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