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에서>반디族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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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어느 국민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미술시간이 되자 선생님이 식구들이 모여 저녁 식사하는 장면을 그려보라고 했다.어린이는 본대로 느낀대로 그릴 뿐이다.
맛있게 먹은 통닭을 크게 그리기도 하고 밥먹을 때 꾸중만 일삼는 엄마를 유독 크게 그리기도 한다.
그런데 그림을 다 그린 몇몇 어린이 중엔 아버지를 그리지 않는 학생도 있다.『저녁 식사할때 아빠는 한번도 계시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아빠는 바쁘다는 얘기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이들이 늘어간다.그러나 아직 끊지 못한 담배를 피우기 위해 오늘의 아버지들은 담배연기를 싫어하는 가족을 피해 아파트 베란다에 나가 피운다.
밤중에 아파트 베란다에 반딧불처럼 반짝이며 담배를 피우는 오늘의 아버지들을 그래서 우리는 반디족(族)이라 부른다.
미래학자들은 다가올 새로운 세기의 특징중 여성이 사회생활의 중심권으로 들어오는 것을 예견하고 있다.
한국의 세탁기는 여자가 사지만 세탁은 남자가 한단다.세탁기 광고에서 남편이 세탁기를 돌리는 장면이 반드시 나오게 마련이다. 연일 방송되는 드라마에서 남자의 감춰져 있던 치부가 속속 드러난다.
드라마 작가의 85%는 여자이고 세탁기 광고의 카피라이터 또한 대부분 여자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아빠라는 말이 생기고 아버지가 없어진 셈이다.가정의 경제권마저 아내에게 넘어간지 오래라고 야단이다.
은행이 급여 자동이체를 통해 월급봉투를 다달이 건네주던 부권(父權)마저 앗아갔다고 한다.그러나 선조들은 옛부터 곳간열쇠는부인에게 넘겨 주고도 부권은 살아 있었다.
권위란 돈이나 지위.물질만으로 얻어지는게 아니다.
돈만 건네주면 처자식을 먹여 살린다고 생각하는 아버지들에대해논어(論語)에서는 「그것은 사육(飼育)일 뿐」이라고 일찍이 경고하고 있다.
모름지기 다함없는 사랑의 실천이 있어야 한다.
〈상업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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