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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지성] '아담과 이브 그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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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면

▶ 1989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에이즈 대책회의에 참가한 이 책의 저자들(키 크고 안경 쓴 이가 맬컴 포츠, 작은 이가 로저 쇼트)이 세계에서 가장 큰 콘돔 옆에 섰다. 지름 9m, 높이 9m인 이 콘돔 열기구는 생명을 구하는 기구에 대한 관심을 끌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너무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비행은 금지되었다.

아담과 이브는 구약성서가 인류 최초의 남성과 여성이라고 내세운 사람 이름이다. 이들이 그후에 어떻게 되었느냐고 묻는다면 싱겁지만 선악과(善惡果) 따 먹고 놀다가 죽었노라고 대답할 수 있다. 하지만 동물과 인간의 성적 행동에 깊은 관심을 지녔던 영국 의사 맬컴 포츠와 수의사 로저 쇼트는 그들이 번식을 통해 죽음을 넘어섰다고 본다. 성(섹스)은 죽음에 대한 삶의 승리이며 우리 유전자에게 불멸성을 약속하는 인간 존재의 중심이라는 것이다. 삶의 여정을 인간의 번식을 통해 바라보는 지은이들은 섹슈얼리티에 관한 풍부하고 기름진 풍속문화사를 펼쳐보인다.

첫 문장은 간결하면서도 함축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수없이 많은 시간을 섹스를 생각하며 보낸다." 성에 관해서는 할 말도 많고 해 줄 말도 많다는 것이 5백20여 쪽이 넘는 두툼한 이 책의 요지다. '다윈주의적 진화'를 신봉하는 두 의사는 앞으로 인류가 잘 살아가기(well-being) 위해서는 섹슈얼리티를 깊이 있게 통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행동과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성적이거나 성과 연관된 다양한 양태들을 잘 관찰해야 '아담과 이브 그후'는 죽 지속가능해진다는 주장이다.

성과 젠더.사랑과 결혼.섹스와 임신.출산과 수유.성장.섹스의 문명화.섹스와 권력.사랑을 위한 죽음.섹스와 죽음.너무 많은 인구.인간 속에 내재된 동물성 등 13장에 걸쳐 시시콜콜 풀어놓은 성 얘기는 때로는 흥미롭고 때로는 교훈적이다. "도대체 왜 성이 분리되어 연극처럼 보이는 섹스 행위를 하게 만드는 것일까"라든가, "왜 인간들이 다른 사람들이 보거나 듣는 곳에서의 성교를 극구 피하려 하는지에 대한 생물학적인 이유" 같은 대목은 섹스에 관해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에 속한다. "생명을 전달하는 액체는 동시에 죽음을 운반하기도 한다""지식을 의미하는 히브리 단어 da at는 동시에 섹스를 함축하는 말이기도 하다"라는 구절은 우리를 생각하게 만든다. 내용과 딱 맞아떨어지는 적나라한 사진과 그림, '콘돔의 발명' '페니스의 크기' 등 작은 상자로 따로 처리한 궁금증 백과 등이 책을 읽는 감칠맛을 더한다.

21세기의 아담과 이브인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두 저자가 내놓은 답은 맥빠지게 평범하다고 말할 수 있다. "모든 여성들에게 남성과 평등한 기회를 주되, 남성과 다른 여성들의 생물학적 전략 목록을 고려하여 남성과 다르게 일할 수 있는 자유도 아울러 주어야 할 것이다." 우리 종의 영속과 우리 자신의 짧은 생의 완성을 위해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게 하는 '남녀의 차이를 찬양하라'지만, 아직 우리 현실은 찬양보다는 애증 쪽이지 싶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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