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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라운지] 북한 가면 국제여행? 국내여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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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김포공항에서 평양행 비행기가 출발하는 날이면 색다른 장면이 벌어지곤 한다. 평양행 승객은 김포공항의 국내선 청사가 아닌 국제선 청사로 모인다. 체크인과 보안검색을 거친 뒤 여권을 들고 법무부 출입국관리소의 출국수속을 밟는다. 얼핏 보면 해외여행을 떠나기 위한 절차와 다름이 없다.

그런데 그 다음부턴 차이가 난다. 해외여행객은 출국수속을 마친 뒤에는 대부분 면세점에 들러 선물도 고르고 여행 필수품을 사기도 한다. 하지만 평양행 승객은 동일한 출국수속을 마쳤음에도 면세점에 들를 수 없다. 이용 자체가 허가되지 않기 때문이다. 김포공항에서는 아예 평양행 승객이 면세점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공항 직원이 통제를 한다.

설령 통제를 뚫고 면세점에 들어가 물건을 골랐더라도 계산 직원에게 보여주는 비행기표가 평양행이라면 퇴짜를 맞는다. 이 같은 상황은 인천공항에서도 마찬가지다. 평양행 승객은 해외 여행과 똑같은 출입국 절차를 거치면서도 정작 해외 여행객이 자유롭게 들르는 면세점은 이용하지 못하는 '제3의 여행객'인 셈이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질까. 북한 방문은 해외 여행이 아니라 국내 여행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면세점 이용은 해외 여행자에게만 허용된다. 제주공항의 국내 여행객을 위한 면세점은 예외다.

물론 북한 방문을 국내 여행으로 명문화한 법 규정은 없다. 다만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중 북한산 물품은 내국 간 거래로 보고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규정을 근거로 북한 방문을 국내 여행으로 해석한다는 게 관세청의 설명이다. 2000년대 초 금강산 관광이 본격 논의될 때 재경부.관세청.통일부 등 관련 기관이 모여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이라는 것이다.

국내 여행임에도 출입국 수속을 밟는 것은 해외 여행처럼 북한을 여행할 기본요건을 갖췄는지 확인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한다.

남북 간 항공기 운항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때 첫 직항로가 열린 뒤 매년 늘어 지난해에는 88회 왕복했다. 주로 정부기관이나 종교단체, 민간단체 등이 남북 교류 차원에서 전세 항공편을 이용한다. 남한 측에서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또 최근에는 제주항공 등이 이용되고 있다.

북한 방문객이 이용할 수 있는 면세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올해 5월 한국관광공사가 금강산에 문을 연 면세점이 있다. 이 면세점은 금강산관광 활성화 차원에서 특별 허용된 것으로 제주공항 면세점과 비슷한 경우다.

남북 간 항공 교류가 더 활성화되고 탑승객 편의를 고려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선회하지 않는 한 북한행 승객은 당분간 제3의 여행객 신세를 면키 어려울 것 같다.

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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