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작은 도시들 "문화가 살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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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인프라 구축으로 경제도 성장하는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롤리. [중앙포토]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롤리. 주변 농업지대에서 생산하는 담배 거래와 섬유공업으로 생계를 꾸리는 작은 도시다. 주도(州都)라지만 보스턴이나 샌프란시스코 같은 대도시에 비하면 '산간벽지'나 다름없다. 이런 곳에 뉴욕주 롱아일랜드에서 살던 판화가 부부 데일과 킴이 최근 이사를 왔다. "대체 얼마나 먼 곳일까" 걱정했지만 금세 아파트를 얻고 작업을 위한 스튜디오도 마련했다. 마음을 굳힌 이유는 한 가지다. "롤리가 남부 문화를 이끄는 도시가 될 거라고 믿거든요."

문화예술인들이 새로운 터전으로 선택하는 곳은 롤리만이 아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그린빌, 켄터키주의 파듀커 등도 문화 도시로 떠오르고 있다. 작은 도시들이 문화 이미지를 쌓으면서 경제 효과를 거두기 위한 계획의 첫 단계로 예술가들의 이주를 적극 추진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거대 산업을 유치하기엔 역부족인 이들이 도시 발전의 새로운 키워드로 문화를 선택했다.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는 중소 도시들의 변화를 25일 보도했다.

CSM은 '살고 싶은 곳'을 결정짓는 요소가 달라지면서 이런 변화가 가능했다고 봤다. 일자리와 낮은 집값이 전통적인 요소라면 요즘에는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갤러리나 극장, 음악홀 같은 풍부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한 문화적 접근성이 그것이다. '에지 시티(Edge City)'의 저자 조엘 가루는 "도시의 느낌이나 정체성, 교양 수준처럼 돈으로 계산할 수 없지만 중요한 가늠자들이 있다"며 문화적 토양은 사람을 끄는 매력적인 요소라고 평가했다. 미술.음악.공연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다양성이 존중되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마다할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롤리의 경우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시 관계자에 따르면 문화 행사에 1달러를 투자할 때마다 5달러의 수익을 얻고 있다. 행사가 있을 때마다 밀려드는 음악가.화가.무용가들이 머물 곳을 얻고, 레스토랑에서 먹는 데 지출하면서 부가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 덕에 롤리는 지난 3년간 미국에서 가장 빨리 성장한 25대 도시에 꼽혔다. 플로리다의 탤러해시, 노스캐롤라이나의 샬럿도 이런 변화에 가세했다. 탤러해시는 플로리다 주립대 필름스쿨의 영화제를 적극 지원하고 나섰고, 금융 도시였던 샬럿은 곳곳이 갤러리와 박물관이다. 켄터키주의 파듀커는 애틀랜타.뉴욕 출신의 예술가 70명을 이주시켰다.

도시 연구가인 스티븐 페디고는 "작은 문화사업과 스타디움 건설 중 어떤 것이 더 효과를 거둘지를 단언할 수는 없지만 투자 능력이 없는 도시에 다른 선택은 어렵다"며 그린빌의 성공을 언급했다. 그린빌은 공연장에 투자하고,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무용 교실을 여는 등 작지만 꾸준한 문화사업을 벌인 결과 10년간 일자리가 2배로 늘었다.

홍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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