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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건너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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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흔히들 인간의 삶은 등산과 같다고 한다. 정상에 오르기까지의 온갖 고난과 역경, 그리고 오르기보다 더 어려운 하산의 길 등이 인생과 닮았다는 것이다.

캐나다의 여행가이자 컨설턴트인 스티브 도나휴는 이에 반론을 제기한다. 인생은 분명한 목표가 보이는 산보다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한 끝을 알 수 없는 사막을 더 닮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도나휴는 본인의 경험에 입각해 사막을 슬기롭게 건너는 방법을 제시했다(『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지도를 따라가지 말고 나침반을 따라가라는 것이다. 위치에 집착하지 말고 방향성을 중시하라는 얘기다. 산은 비교적 목표가 명확하고 길도 알려져 있으며 시간을 계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도와 같다. 이와는 달리 제대로 된 길이 없고 상식이 안 통할 때가 많은 사막에선 그 길이 어디로 통하는지, 그 끝이 어디인지 모른다. 따라서 사막에선 눈에 보이는 것보다 항상 내면의 나침반에 귀를 기울이는 방향 감각이 중요하다. 프랑스의 조종사이자 소설가였던 생텍쥐페리가 “나는 지도를 보며 하룻밤을 꼬박 새웠다. 하지만 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으므로…”(『사막의 죄수』)라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모래에 갇히면 타이어에서 바람을 빼라는 가르침도 인상 깊다. 사막의 모래 늪에선 차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강하게 페달을 밟을수록 타이어는 더 깊숙이 처박힌다. 강한 자아도 중요하지만 어려움에 처할수록 고고한 자아에서 공기를 조금 빼내야 한다는 게 삶의 지혜다. 자신에게 원했던 결과를 가져다 주었던 기존의 태도, 신념에서 힘을 빼고 겸허해지면 자신이 완벽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오아시스를 만날 때마다 쉬어 가는 것도 노하우다. 오아시스에서는 물만 마시지 말고 쉬어 가야 한다. 정상에 오르는 데만 급급해 하기보다는 잠시라도 멈춰서 활력을 되찾고 앞뒤를 점검하는 쪽이 효율적이고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더 많이 쉴수록 더 많이 갈 수 있다는 것이 사막 여행의 지혜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이제까지의 여정은 등산길이었다. 정상이라는 눈에 보이는 목표가 있었고 그걸 향해 힘차게 등정했다. 그리고 끝내 정상을 정복했다. 그러나 정상에 선 그가 앞으로 맞이할 여정은 산보다는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사막이 될 것이다. 그래서 사막을 건너는 지혜가 필요하다. 현상(지도)보다는 방향(나침반)을 중시하고, 교만하지 말고, 쉴 때는 쉬어야 한다.

김현기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