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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케'에대한 오해와 진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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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호 27면

서울 명동 밀리오레에서 대연각 호텔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김태경,정한진의 음식수다

“어, 여기 이자카야가 있네.”

빨간 등도 걸려 있지 않고 깨끗한 건물에 자리 잡고 있어 호기심이 발동한다.

“여기서 사케나 한잔하고 갈까?”

그래서 일본식 선술집 ‘아지켄’(02-318-4441)에 들어갔다. 먼저 우동으로 출출한 속을 달래는데 다른 이자카야에서 마구 내주는 그런 맛과는 분명히 달랐다.

“일본에선 술집을 이자카야(居酒屋)라고 하는데, 이것은 말 그대로 ‘술이 있는 집’이란 뜻이잖아요.”

“그렇지. 우리야 일본식 선술집이라고 하지만 그냥 ‘술집’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흔히 일 끝나고 와서 먹고 마시는 대중적인 술집. 하지만 이자카야는 술도 청주·소주·맥주·와인 등 수십 종이 있고 안주도 다양하다는 게 특징이야.”

“이자카야의 매력 가운데 하나가 바로 양은 적지만 비교적 저렴하고 맛있는 안주가 많다는 거잖아요. 자그마한 이자카야에서도 안주가 다양해 몇 가지를 골라 맛보면서 가볍게 한잔하기에 그만이고요.”

“잠깐, 우리 술은 무엇으로 할까?”

약간의 욕심을 부려 좋은 사케를 시켰더니 입에 대기도 전에 잔잔하면서도 상큼한 향이 올라온다.

“이자카야라는 말처럼 사케라는 말도 그냥 술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것이 전통주인 일본 청주를 일컫는 말이 돼 버렸어. 외국에서 여러 술이 들어오자 ‘니혼슈(日本酒)’라는 말을 만들기도 했고.”

“그런데 요즘 젊은 층에서 사케가 유행이라면서요.”

“일본 문화에 대한 친숙함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깊은 풍미와 수천 종에 이르는 사케의 다양성 때문이지 싶어. 일본 청주는 쌀의 정미율에 따라, 순전히 쌀로만 빚었는가에 따라 등급이 나눠지고 맛의 섬세함도 달라지니까. 게다가 규격화되어 대규모로 생산하는 큰 회사들이 있는가 하면 됫박으로 청주를 파는 소규모 양조장이 수없이 많고. 지역 따라 물맛도 다르고.”

“아쉬운 것은 지난번에도 이야기했지만 우리의 전통주가 제대로 명맥을 유지했다면 그 풍부하고 다양한 맛을 잘 살려 지금 우리가 얼마든지 즐길 수 있었다는 점이에요. 집집마다 빚었던 가양주만 봐도 그렇잖아요.”

“일본에서는 와인 ‘소믈리에’를 본따서 ‘기키자케시’ 자격 제도도 만들었다고 하잖아. 우리도 전통주에 대한 투자와 마케팅 전략이 있어야지.”

“저는 대학 때 뜨겁게 데운 사케를 맥주잔으로 내는 ‘정종대포’를 몇 잔 마시고 완전히 취한 적이 있어 사케를 멀리했었어요.”

“그건 준마이슈(純米酒)가 아니고 알코올을 첨가한 혼합주였으니까 그렇지. 그리고 사케는 데워 먹는 게 아니고 차게 마시는 거야. 데워 먹는 습관은 과거의 조악한 혼합주 때문에 나온 것이지. 이 좋은 향을 데워서 다 날려버리면 무슨 맛이야.”

사케의 향과 맛을 음미하면 음미할수록 사케가 풍기는 매력에 이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안주로 시킨 생선회도 여러 생선을 담아내지 않았지만 신선하고 깔끔해서 사케와 잘 어울렸다. 저녁에 친구나 동료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가볍게 한잔하기에 좋은 곳이 생겼다.


맛있는 것 먹기를 낙으로 삼는 대학 미학과 선후배 김태경(이론과실천 대표)ㆍ정한진(요리사)씨가 미학(美學) 대신 미식(美食)을 탐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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