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내각이끌 이홍구총리의 역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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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홍구(李洪九)총리는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역대 국무총리는시대의 흐름과 임명권자의 뜻에 따라 역할과 위상이 제각각 달랐다.이런 역할에 따라 방패총리니 의전 총리.실무총리.실세(實勢)총리등 갖가지 별명이 뒤따랐다.
문민정부 들어서도 황인성(黃寅性).이회창(李會昌).이영덕(李榮德)총리를 거치면서 허실(虛實)과 강온(强穩)이 교차했다.
이번에는 정부 조직 개편이 이루어지고,특히 국무총리실의 위상이 강화된 뒤의 내각을 맡게된다는 점에서 李신임총리의 역할이 기대를 모으고 있다.
李총리는 처신이 상당히 정치적이면서도 권력추구형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탈(脫)정치적이다.따라서 李총리는 자신의 역할을 비정치적인 국정 실무에 제한하는 실무총리쪽을 택할 것으로 점쳐진다. 내년은 지방선거와 민자당의 전당대회등 정치적으로 매우 복잡한 시기다.이런 시기에 국정 운영을 李총리에게 맡겨놓으려는 구상으로 보인다.특히 이런 정치일정과 병행해 세계화의 조류에 뒤처지지 않아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어 李총리를 지명 한 것이다.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17일 오후 李총리에게 임명장을 주면서『이제는 세계화를 구체적으로 추진해야 한다.李총리는 세계정세에 밝고 국제적인 문제를 잘 아는 만큼 잘 하리라 믿는다』고특별히 당부한 것도 그런 의중(意中)을 드러낸 것 이다.
따라서 국정 운영에 관한 한 李총리에 상당한 권한을 위임할 것으로 보인다.
대북(對北)정책에서 혼선과 갈등이 엄청나게 증폭되고 있던 올해초 李총리가 통일부총리를 맡으면서 가닥을 잡기 시작한 것도 그의 조정 능력을 확인시켜주는 사례였다.
李총리의 이러한 脫정치적이면서도 균형잡힌 처신이 야당에도 호감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박지원(朴智元)대변인이 발표한 공식 논평은 李총리를평가절하했지만 상당수 민주당 의원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은 그런 분위기를 말해주고 있다.17일 임명동의안에도 야당의원이 최소한 24명은 찬성표를 던졌다.
이런 야당의 반응에는 그의 모나지 않은 성격외에 김대중(金大中)亞太평화재단이사장과의 관계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야당의 호감은 그의 추진력에 상대적으로 힘을 더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李총리는 통일원을 떠나더라도 외교.안보.통일분야에는 계속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이회창前총리는 통일문제까지 장악하려고 하다 청와대와 마찰을 빚었다.그러나 金대통령은 17일 李총리에게『남북관계 업무를 계속 주도해왔기 때문에 남 북문제도 차질없이 잘 추진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해 이 문제에도 재량권을줄 것임을 확실히 했다.
특히 내년 김정일(金正日)이 주석직에 취임하고나면 남북관계에도 큰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이제 남북관계는 대결적인 대화차원을 넘어 실질적인 경제.외교.안보분야의 협력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점에서 민족공동체론을 제기하고 있는 李 총리의 역할이 기대된다.
경제문제는 기획원부총리가 총괄하고,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는 것이 상례였다.더구나 경제부총리가 재정경제원으로 비대화된 부처를 장악해 세입과 예산.금융정책까지 갖게돼 권한이 더욱 강화된다.따라서 이번 내각에서도 일정 부분 그런 2분적 인 내각운영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공정거래위원회가 총리 직속기관이 되고,차관회의를 행정조정실장이 주재하게 돼 있어 이제까지 다른 총리들보다는 훨씬 많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총리실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金鎭國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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