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진짜 살리는지 내 두고볼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욕쟁이 할머니'' 강종순(67)씨는 이명박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19일 밤에도 자신의 포장마차에서 안주를 준비하고 있었다. 강 할머니는 "내 일 처럼 기쁘다"며 "경제 꼭 살려서 서민들 잘살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강할머니는 이명박 당선자의 TV광고<下>에 함께 출연해 화제가 됐다.

"워따 진짜로 (당선)됐어? 인자부턴 진짜로 경제 살리는지 내가 두고 볼 테니께 잘해야써."

19일 오후 8시가 조금 넘은 시각,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당선이 확실하다는 소식을 들은 '욕쟁이 할머니' 강종순(67)씨는 '약속 지켜라'는 말부터 꺼냈다. 이 당선자의 대선 TV 광고에 해장국집 주인으로 출연해 "밥 처먹었으니께 경제는 꼭 살려라잉"이라고 괄괄하게 한마디 퍼붓던 모습 그대로였다.

이날 저녁 강 할머니는 여느 때처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건물 지하에서 운영하는 실내 포장마차 가게에 나왔다. 주문받은 안줏거리를 만들면서 선거 개표 방송이 흘러나오는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공연히 실내를 왔다 갔다 했다. 아들뻘인 10년 단골손님들과 실시간 개표 소식을 함께 확인하며 강씨는 내뱉듯 "암(아무) 쏘리(소리) 못 나오게 확 이겼으면 좋겠네이~"라고 말했다.

강 할머니는 TV 광고 출연 뒤 낙원동 해장국집이 아니라 강남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애써 무시하려 했지만 속앓이를 좀 했다고 한다. 사흘 전 '이명박 동영상'이 나오고 후보들 간 비난이 극심해지면서부턴 "속상해서 TV를 꺼부렀다"고 했다. 이날 저녁 강 할머니의 얼굴엔 오랜만에 화색이 돌았다.

"경제를 살릴 인물 같아서 (이 당선자를)지지했다"며 "든든한 가장 같은 대통령이 돼야해. 가장이 내 가족 밥은 먹여가면서 남 도와주겠다고 해야지, 가족 굶기며 남 돕겠다고 하면 누가 좋아해. 노무현 대통령은 그걸 못했어." 이 당선자를 향한 강 할머니의 당부는 어느 학자 못지않았다. 강 할머니는 "우리는 가진 것 없는 나라잖여. 있는 대로 다 후벼 파먹고 남은 건 사람밖에 없는데 새 대통령은 이 사람들을 모아서 지혜를 짜내야 혀"라고 당부했다.

강 할머니는 "선거가 끝나도 특검이다 뭐다 해서 시끄러울 거라고 하든디…. 국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갚는 수밖에 읍써. 이명박이 잘해야 광고 같이 찍은 내 체면도 서지"라고 선거 이후 혼란스럽지 않겠느냐고 했다.

강 할머니는 이제까지 대통령 선거 때마다 한번도 투표를 거른 적이 없다고 했다. 이날도 새벽 5시30분에 장사를 마치고 퇴근해서 3시간 눈 붙이고 남편 장창돈(71)씨와 함께 투표장에 갔다. 이날 새벽에는 5년 만에 가게를 찾은 오래된 단골에게 "누굴 찍든 투표는 꼭 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젊은 사람들이 투표를 많이 해야 새로운 대통령에 힘이 실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강 할머니는 "동대문에서 옷장사 하는 아가씨인데 하도 살기가 힘들어서 그동안 못 왔다 그러데. 어찌나 맴이 쓰리던지…. 새 대통령은 젊은이들만이라도 밑바닥에서 안 헤매게 해주면 좋겠어"라고 말했다.

그새 얼굴 한가득 웃음이 번진 강 할머니는 이 당선자에게 "아주 멀고 낮은 곳에서 내가 지켜볼 테니 열심히 해달라"고 한 번 더 당부했다. 그는 "2번이 당선되면 내가 무료로 안주 서비스 주겠다고 한 약속 지키려면 돈깨나 나가겠다"며 "아낄 때는 10원짜리 하나도 아끼지만 기분 좋게 쓰는 돈은 안 아낀다"면서 앞치마로 물 묻은 손을 훔쳤다.

박수련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