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프·리·즘] '비평의 부재' 방치는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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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 서울에서 공연된 뮤지컬 수는 160편(더뮤지컬 12월호)이다. 2006년 111편(뮤지컬협회 발표)에 비하면 무려 44%가 증가했다. 작품 수로만 따진다면 서울은 뮤지컬 메카인 브로드웨이나 웨스트 엔드보다 많은 공연이 올라가는 셈이다. 장기공연이 없기 때문에 작품 수가 많았다는 점을 감안해도 역시 대단한 결과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KOCCA) 미국사무소 자료에 따르면 한국 뮤지컬 시장은 2000년에 비해 5배나 성장했다.

하지만 인적·물적 인프라가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다양한 문제가 발생했다. 지나치게 높은 라이센스 뮤지컬 의존도, 수요보다 많은 공급, 맹목적인 믿음으로 몰려든 투자자들, 졸속 제작되는 뮤지컬…. 이러한 문제도 문제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잘못된 점에 대한 ‘비평의 부재’다.
국내 뮤지컬은 지금까지 비평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었다.
첫째, 비평가가 없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뮤지컬 평론가는 단 둘뿐이다. 한해 올라가는 작품이 160편이라고 볼 때 턱없이 부족하다.
둘째, 영화나 연극은 나름의 미학을 발전시킨 반면 뮤지컬은 장르의 특성을 체계적으로 정립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작품을 분석하는 틀이나 비평의 방식이 마련되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일간지 문화부 기자가 쓰는 짧은 리뷰가 뮤지컬 비평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것마저도 가치 있는 논쟁거리를 만들거나 작품의 결점을 냉정하게 지적하는 비평이 아니라 홍보성 비평이 많았다. 작품성이 떨어지는 작품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비평을 대신했다.
해외의 경우에도 뮤지컬 평론가가 별도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공연 평론가가 역사·사회·문화적인 맥락에서 작품을 분석함으로써 대중들은 이를 잣대로 선택을 하게 된다. 평론가는 작품 평가 뿐만 아니라 왕성하게 토론할 수 있도록 담론거리를 제공한다. 비평가가 한 발 앞서 창작자들의 작업을 평가하고 격려하고 때로는 질책하면서 작품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제공해야만 창작 작업이 활성화할 수 있다. 국내 시장처럼 창작 뮤지컬이 열악한 상황에서 평론가의 존재는 더없이 중요하다.

뮤지컬 평론가는 다양한 작품을 접하면서 다각도로 분석할 수 있는 시각 및 그것을 글로 풀어낼 수 있는 실력이 있어야만 한다. 지금은 뮤지컬을 제대로 평가하고 누구에게나 신뢰받을 만한 평론가가 없다. 믿을만한 전문가가 등장하려면 좀더 시간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 그렇다고 비평의 자리를 방치해두고 있을 수는 없다. 창작자든, 기획자든, 기자든 작품에 대한 다양한 담론을 만들고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충분한 고민에서 나온 자기 논리가 확실한 비평이라면 설사 많은 이들이 공감하지 못한다고 해도 논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노력들이 차곡차곡 쌓일 때 전문 비평가의 등장은 앞당겨질 것이다.
박병성 (‘더뮤지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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