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남북관계 냉각 남북모두에 책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서울 불바다」,유엔안보리의 대북(對北)제재추진,카터 방북(訪北),남북정상회담 합의,김일성(金日成)사망,조문파동,북-미「핵」타결과 연락사무소개설 합의,경수로 지원,대북경협 재개.
한햇동안 우리는 이같은 깜짝깜짝 놀랄 큰 제목의 뉴스들에 일희일비(一喜一悲)했다.
불길한 일이 터질 것 같은 불안감에 라면 사재기로 몰렸는가 하면 50년동안 한반도를 짓눌렀던 냉한(冷寒)을 거둘 것이라는기대 속에 정상회담소식에 들뜨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실망과 좌절로 이 해를 넘기고 있다.
연초 남북관계를 긴장으로 몰아넣었던 북한 핵문제가 북-미 제네바합의로 타결됐으나 남북관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남북간엔 지난 구원(舊怨)과 불신이 더 깊어지는 감이 있다.
이 해를 넘기면 광복 50년.
한민족이 분단된 지 반세기가 지나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대화다운 대화도 못하고 있다는 것은 수치스런 일임에 틀림없다. 남과 북이 서로의 관계에서 한 걸음도 옮기지 못한 데는북한쪽 책임이 크다.
적화통일을 분단이후 대남(對南)정책의 기조로 삼았던 북한은 80년대말 공산권붕괴이후 체제유지에 온갖 정책의 우선을 두고 있다. 더구나 49년간 절대군주로 군림해 온「위대한 수령」의 죽음으로「신이 없는 사회」가 된 북한으로서는 체제유지가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가 되어 있다.
더구나 북한은 과거 우방이었던 동독이 어떤 과정을 통해 서독에 흡수통일됐는지 알고 있다.
핵개발이라는 이슈를 들고 나온 것도,미국과의 대화만을 고집하는 것도 체제유지를 위한 행동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세계질서를 요리하는 강대국 미국으로부터 체제유지의 담보를 받아내야겠다는 전략이다.
경제협력을 바라면서도 남한을 배재하고 불신하며 대화를 거부하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를 돌아보면 남북관계의 냉각에 북한만 책임이 있는 게 아니다.
일관된 철학이 없고 말과 행동이 다른,조금은 성숙하지 못한 우리의 정책에도 일단의 책임이 있었다.
대화하며 더불어 살 대상임을 말하면서도 우월한 경제를 바탕으로 흡수통일운운하고 통일비용을 거론하거나 자유국가들과의 관계개선 지원을 말하면서도 이를 우려했다.
또 온건정책을 내걸었다가 조그만 자극에 강경으로 돌아섰고 이것이 몰고온 경제.사회에의 영향을 감내(堪耐)하기 두려워하기도했다. 민족문제에 대한 확고한 철학의 결여가 가져온 위대한 모순이었다.
이는 북한의 신뢰를 얻지 못하게 했을 뿐더러 북한문제를 함께다루는 미국도 미심쩍어 하게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핵문제 해결책으로 제시된 한국형 경수로를 북한이 계속 거부하는 것이나 미국이 이와 관련해 한국대통령의 각서를 요구한 것등은 우리가 자초(自招)한 불신의 결과인지 모른다.
한국은 이제 스스로의 정치력으로 돌파하지 못한 남북관계를 북-미합의라는 타율에 의해 재정립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동안 대북정책에서의 일관성 결여는 남북관계의 현상타파를 바라면서도 변화는 거부하는 패배주의적 두려움의 소산이기도 했다.
여기에는 남북관계의 개선을 바라지 않는 대북강경론자들의 끈질긴 목소리도 한몫을 했다.
역사는 스스로 변화를 주도하는 자의 것이고 변화 속에 기회가있다. 남북은 지난해 남북관계의 발전을 가로막았던 장애가 무엇이었는지를 반성하고 3자개입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민족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를 발견할 때가 됐다.
〈朴晙瑩.정치2부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