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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대통령과 기자실 통폐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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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런 정보와 공약을 토대로 당선자는 내년 2월 25일부터 5년 동안 펼칠 정책과 정부조직 개편안 등을 가다듬을 것으로 보인다. 차기 정부의 국무총리와 장관 등에 대한 인선 작업도 병행될 것이다.

당선자는 즉각 국가 운명을 좌우할 핵심 현안과 씨름을 시작해야 한다. 사상 최대 규모로 확대된 국가부채와 가계부채, 빈부의 격차를 놓고 고심할 수밖에 없다. 국제 금융시장 경색에 따른 국내 은행·기업들의 자금난도 당선자를 압박할 것이다. 사회 갈등을 낳고 있는 대학입시, 청년실업의 급증도 국가의 중대 현안이다.

좌초 위기를 맞고 있는 북한 핵 문제도 당선자가 고심해야 할 사안이다. 6자회담 2·13 합의에 따라 북한은 올 연말까지 성실하게 모든 핵 프로그램을 신고해야 하나 북한은 이를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노무현 정부와 일선 기자들이 심각하게 대립하고 있는 기자실 통폐합 문제도 당선자가 외면할 수 없는 현안이다. 기자실은 언론자유 및 국민의 알권리와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15일 밤부터 국방부 기자들은 촛불 밤샘 농성을 벌이고 있다. 국방부 기자들에 앞서 촛불 농성을 벌이던 경찰청 출입기자들은 “맥주 하자”는 공보 관계자의 술수에 걸려들어 기자실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외교·통일·교육·재경부 등의 출입기자들은 이미 기자실에서 쫓겨나 카페나 PC방 등에서 기사 송고를 하고 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국방부 출입기자들은 ‘3실기자’라고 불렸다. 기자실과 공보관실, 화장실만 출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엔 국방부·합참 당국자에 대한 취재가 철저히 통제됐었다. 국방 분야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될 수밖에 없었다.

주요 대선 후보들은 이구동성으로 노무현 정부의 이른바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인 ‘기자실 통폐합 조치’를 비판하고 있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기자실 폐쇄 등은 시대착오적 조치이며 집권하면 원점에서 검토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도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하도록 접근권을 확실히 열겠다”고 공약했다. 이회창 무소속 후보는 “집권하면 이른 시일 내에 원만한 언론환경을 조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누가 되든 기자실 복원 문제는 다시 제기될 수밖에 없다. 물론 노 대통령이 특유의 오기로 두 달 남짓 남은 임기 중엔 당선자의 기자실 복원 제의를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 해도 말이다.

노무현 정부가 기자실 통폐합의 명분으로 삼았던 과거 기자실의 잘못된 관행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취재원들에게 신속하고 깊숙이 파고드는 연결 통로로서의 기능만 살아 있을 뿐이다.

당선자는 노무현 정부에 의해 길거리로 내몰린 일선 기자들의 항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기자들에게 기자실은 공간 개념이 아니라 취재의 도구다. 한 통일부 출입기자는 “정부의 요구대로 통합브리핑룸에 들어가면 당국자들과의 접촉이 현저히 감소돼 정부의 입맛대로 만든 보도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린다”며 기자실 복원을 요구했다.

기자실 통폐합은 노무현 정부의 유산이다. 이를 극복하는 시간은 빠를수록 좋다. 집권했을 경우 늘 갖게 되는 정보 통제 유혹과 언론의 비판에 대한 불만이 자리 잡기 전에 해결해야 한다.

정보를 통제하면 할수록 민심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역사의 교훈을 가슴 깊이 새길 것을 기대해 본다.

이철희 정치부문 부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