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두우시시각각

아홉 개의 단점과 하나의 장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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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안타까운 날들이었을 것이다. 후보자들에게는. 또 그 소속 정당과 참모들에게는. 상대방의 새로운 네거티브 공세가 튀어나올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고, 검찰의 입만 바라보면서 마음 졸였으리라. 그래도 흔들리지 않는 지지율에 가슴 쓸어내리면서도 그 하루가 열흘 같았으리라. 단일화 얘기가 나올 때마다 ‘그래, 이젠 한번 해 볼 수 있을 거야’ 다짐해 보지만 번번이 절망하고, 상대방을 무너뜨릴 ‘한 방’에 한 가닥 기대를 걸었다가 또 실망하고, 아무리 국민의 가슴을 두드려봐도 끄떡도 하지 않는 민심의 철벽 앞에 깊은 좌절을 느꼈으리라. 비판적인 여론에 화나고 도덕성이 별로 없어 보이는 후보가 독주하는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기도 했으리라. 10% 벽을 넘어설 듯 넘어서지 못한 안타까움에 발을 굴렀으리라.

 정작 국민은 화나고 짜증났다. 외면하고 싶은 날들이었다. 마땅히 찍을 후보를 찾기 힘든 재미 없고 심드렁한 대선이었다. 무대 위에는 공인 의식과 도덕성이 모자란 후보, 현 정권에 대한 심판의 멍에를 벗어나고 싶어 당 이름만 살짝 바꾼 후보, 소속 정당의 후보가 거꾸러지기만 기다리다가 지쳐 뛰쳐나간 후보,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당을 옮겨 다닌 후보, 검증 한 번 받지 않고 무임승차한 후보뿐이었다. 지난해 10월 이후 14개월 동안 1위는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경쟁자는 겨우 올 10월에야 결정됐다. 그나마 낡은 단일화 쇼에 미련을 두어 혼자 설 수 있는 기회조차 놓쳤다. 국민에게 감흥을 줄 요소는 아무 것도 없었다. 예상을 벗어난 반전은 아예 없었다. 그 흔한 정책 검증 한번 못 해 보고 국민은 투표장에 가야 한다.

성질대로 하자면 투표장에 안 갔으면 딱 좋을 선거다. 앞으로 대통령이나 정치권에 일절 불평하지 않고 살 수 있다면 그래도 괜찮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국가와 정치의 숨결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싫든 좋든 그 영향을 받으며 살게 돼 있다. 그래서 ‘기권도 의사 표시’라는 주장은 헛소리다. ‘내가 찍지 않아도 지지 후보가 될 것 같아서’라거나 ‘내가 찍어도 결과는 바뀌지 않을 것이기에’ 투표하지 않는다면 더욱 한심하다. 숫자에는 마법의 힘이 깃들어 있다. 숫자가 가진 상징성은 세상을 뒤흔든다.

대선은 단순히 대통령이 누구인지 결정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득표율 50%를 넘기느냐 마느냐, 2위는 누구며 그 득표율은 얼마인가, 진보 정당 후보는 몇 %를 얻었느냐에 따라 향후 정치가 달라진다. 새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향이 바뀌고, 정당이 생기거나 사라지고, 내년 4월 총선 결과도 달라진다. 그것이 정치 판도를 좌우하고 마침내 내 생활에도 영향을 준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분명히 해야 한다.

 찍을 마땅한 후보가 없는데 어떻게 하냐고? 이 또한 핑계다. 세상에 내 맘에 딱 드는 후보는 없다. 정치는 맞춤형 양복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기성복을 고르는 것이라 하지 않던가. ‘9와 15와 21’의 최대공약수는 기껏 ‘3’에 불과하다. 바로 이 최대공약수를 찾는 게 선거다. 최선의 후보가 없다면 차선을, 차선의 후보도 없다면 차차선을 찾으면 된다. 정 마땅치 않으면 최악의 후보를 피해 차악을 선택하면 될 일이다.

 내가 진심으로 무엇을 바라는지 아는 게 우선이다. ‘새 대통령은 이것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는 것을 내 마음에서 찾아내 거기에 근접한 후보에게 투표하면 된다. 그게 국민의 뜻으로 모아지면 바로 시대정신이 된다. 우리 국민은 늘 투표를 통해 그때마다 시대정신을 표출해 왔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바로 그런 국민의 선택을 통해 이뤄진 것이다. 아홉 개의 단점에 기껏 하나의 장점만 있는 것 같은 후보들이다. 그래도 그 장점 하나가 워낙 뛰어나기에 대선 후보가 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투표장을 찾는 발길이 조금은 가볍지 않겠는가.

김두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