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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의 새빨간 유혹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0호 27면

“만약 아메리카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이탈리아 요리가 지금의 모습을 지닐 수 있을까?”

김태경,정한진의 음식수다

“무슨 소리야?”

“이탈리아 사람들이 수천 년 동안 토마토를 먹지 않고 어떻게 지냈는지 상상할 수 없잖아요.”

“정말 그러네. 이탈리아 요리를 토마토와 떼어놓고 생각하기 힘들지.”

토마토의 원산지는 이탈리아가 아니라 안데스산맥이다. 이 야생 토마토가 중앙아메리카와 멕시코에 전해졌고, 여기서 처음으로 재배되기 시작했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아메리카 인디언의 일상식품인 토마토를 유럽으로 가져왔다.

“그런데 어째서 유럽인들은 토마토를 식용으로 이용하지 않고, 관상용이나 연회장을 장식하기 위해서만 사용했죠?”

“이탈리아에서는 토마토를 황금사과를 뜻하는 ‘포모도로(pomodoro)’라고 부르잖아. 황금사과는 에덴동산에서 이브를 유혹했던 바로 그 선악과와 같은 것이지. 토마토가 유럽에 처음 들어왔을 때 ‘사랑의 사과’라고 부른 것도, 붉고 음흉스러운 즙이 줄줄 흘러나오는 토마토를 육욕과 성욕의 나락에 빠지게 만드는 금단의 열매라고 믿었기 때문이야.”

이러한 이유로 기독교도에게 냉대받아온 토마토는 유럽에 들어온 지 150년이 지난 17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정원에서 부엌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토마토를 가지고 소스를 만들었다. 토마토와 파스타의 만남은 그 이후에도 150년을 더 기다린 19세기 중반에야 이루어졌다.

“마늘·양파·바질·토마토와 올리브유로 간단하게 맛을 내는 나폴리식 스파게티가 최고죠. 붉고 탱탱한 토마토가 유혹의 손길을 뻗는데 넘어갈 수밖에요.”

“그러고 보니 토마토는 올리브유와 궁합이 잘 맞는 재료야. 올리브도 이탈리아 요리에서 빼놓을 수 없잖아. 신선하고 상큼한 향의 올리브유와 마늘만 넣은 파스타도 맛있고. 성서에서도 노아가 비둘기가 물고 온 올리브 잎을 보고 물이 줄어든 것을 알았듯, 올리브는 오래전부터 재배돼 왔고.”

“지중해 연안에 살던 모든 민족은 자신들이 올리브 나무를 발견했다고 주장한대요. 올리브 나무를 성스러운 것으로 여겨서, 승자에게 주어지는 월계관도 올리브 가지와 잎으로 만들잖아요. 수천 년 전부터 재배된 올리브를 소금물에 저장해 두었다가 먹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올리브를 으깨서 짜낸 기름을 요리에 많이 이용했죠. 아주 드물게도 씨가 아니라 과육에서 얻어지는 올리브유의 싱싱함이란 샐러드에 살짝 뿌리기만 해도!”

“무엇보다 올리브유와 파스타의 만남이 가장 매력적이야. 야채나 해산물을 마늘과 같이 넣고 올리브유에 볶다가 면을 넣고 마지막에 올리브유를 둘러 내는 파스타의 깔끔하고 상큼한 맛에는 누구나 빠져들게 되지.”

“저기 파스타 나오네요. 음, 이 냄새!”

올리브유와 마늘·대파·고등어를 넣은 파스타로 널리 알려진 서울 대치동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그란구스또’(02-556-3960)에서는 고등어 파스타 외에 삼치와 생멸치를 넣고 올리브유를 기본 소스로 하는 파스타도 맛볼 수 있다. 물론 토마토소스 파스타도 지나칠 수 없다. 생선이나 육류 요리에서는 지나친 기교보다 재료 고유의 맛을 잘 살려내는 것이 이 레스토랑의 매력이다.


맛있는 것 먹기를 낙으로 삼는 대학 미학과 선후배 김태경(이론과실천 대표)ㆍ정한진(요리사)씨가 미학(美學) 대신 미식(美食)을 탐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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