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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南 학원수요 하락→주택수요 하락→집값 하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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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정부가 발표한 사교육비 경감 대책 여파로 서울 강남 집값 향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강남 집값 상승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우수한 학군.학원 등 사교육 환경 때문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공교육 강화와 상대평가, 내신 위주의 입시제도 마련 등의 대책이 강남 집값 하락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많다.

정부 방침대로 값 비싼 사설 학원 대신 EBS 교육방송으로 수능시험 준비가 끝날 수 있다면 대치동 등 강남 일대 명문 입시학원 수요가 줄어 주택 수요도 감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강남의 주택 수요가 학군 때문만은 아닌 만큼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집값 어떻게 될까, 문의 늘어=정부 발표가 알려진 18일 오전 강남 일대 부동산 중개업소에는 향후 집값을 묻거나 매입 여부를 상의하려는 전화가 이어졌다. 강남구 개포동 남도공인 이창훈 사장은 "최근 강남에서 비싸게 집을 산 사람들이나 매입을 고려 중인 수요자들이 향후 집값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며 "집을 샀다가 이번 대책으로 값이 떨어질까봐 불안해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전했다.

강남 이사를 준비하던 일부 수요자는 관망세로 돌아섰다. 중.고생 자녀를 둔 주부 강모(41.서울 광진구)씨는 "요즘 강남 집값이 떨어져 명문고 인근 아파트로 이사가려고 대치동.도곡동의 아파트를 알아보던 중이었다"며 "정부 대책의 파장을 좀 더 지켜본 뒤 매입 여부를 결정해야겠다"고 말했다.

◆가격 조정 불가피=전문가들은 대체로 사교육비 경감 대책이 강남 집값 안정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강남구 대치동 천일부동산 권희준 사장은 "이 동네로 집을 구하러 오는 사람의 절반 정도는 학군.학원 때문"이라며 "사교육의 필요성이 줄어들면 장기적으로 신규 유입 수요가 20~30%는 감소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부동산컨설팅회사 시간과공간 한광호 대표는 "강남 집값 상승 요인에 교육 외 복합적인 요소가 포함된 만큼 파괴력은 크지 않겠지만 이른바 '강남불패'신화를 막을 수 있는 조치임에는 분명하다"고 말했다.

특히 내신 위주의 대학입시가 이뤄지고, 절대평가에서 같은 학교 내 학생끼리 우열을 가리는 상대평가제로 바뀔 경우 우수 학생이 많은 강남지역 거주를 꺼리는 현상도 생길 것으로 보고 있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강남 집값의 향배는 내신 위주의 입시와 상대평가제의 구체적인 방법과 정착 여부에 달렸다"며 "만약 제도가 제대로 시행되면 아주 뛰어난 학생을 제외하고는 강북과 신도시, 수도권으로 이탈하는 사람이 늘어 강남 집값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명문학교 선호현상이 감소하면서 특정학교 배정 여부에 따른 집값 차이도 줄어들 전망이다. 실제 대치동 대청중학교에 배정되는 대치동 개포 우성1.2차, 개포 선경 등의 40평형대는 이 학교에 못 가는 인근의 미도나 쌍용의 비슷한 평형보다 2억원 이상 값이 비싸다.

특수목적고가 수학.과학.외국어 우수자 양성이라는 취지에 맞게 운영돼 명문대 진학이 어려워질 경우 강남 등지의 주택 수요도 자연히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특목고 입시를 위한 전문학원은 강남에 많다.

강남뿐 아니라 특수목적고 진학률이 높은 노원구 중계동 학원단지 인근의 아파트도 영향을 받을 것 같다. 중계동의 한 중개업소 사장은 "중계동 은행네거리 학원가를 걸어서 이용할 수 있는 아파트는 현재 평당 시세가 1천2백만~1천6백만원이지만 좀 떨어진 곳은 평당 6백만~8백만원대에 불과할 만큼 편차가 크다"며 "학원 수요가 줄면 집값 차이도 줄어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아파트뿐 아니라 학원 등 상가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대치동 B공인 관계자는 "앞으로 학원 과외가 오후 10시까지로 제한되는 데다 이번 대책까지 겹쳐 대안을 찾지 못한 학원 상가 매물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영향 적다'시각도=하지만 이번 사교육비 경감 대책이 강남 집값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주택산업연구원 장성수 박사는 "강남 주민 가운데 생활이 넉넉한 경우가 많아 자녀들을 대학에 보낸 뒤에도 떠나지 않는 것은 생활 여건.커뮤니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며 "강남 집값 상승을 '학군과 학원'만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신한은행 고준석 부동산재테크팀장은 "1980년대와 90년대에도 TV프로를 통한 교육을 했었지만 반짝 효과에 그쳤을 뿐 사교육 열풍은 여전했다"며 "그간 교육정책이 워낙 많이 바뀌었고, 이번 대책도 지속성과 실효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아 강남 집값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서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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