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up] 새 선장 맞은 위기의 금융거함 씨티그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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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에 흔들리고 있는 거함 미국의 씨티그룹이 11일 새 선장을 맞아들였다. 인도계인 비크람 팬디트(50)를 새 최고경영자(CEO)로 선임한 것이다. 씨티그룹은 이번 사태로 최소 90억 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 3분기 순이익이 57%나 줄어들고 4분기에도 80억~110억 달러의 추가 상각으로 인해 손실이 불어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에 시달리고 있다.

이 일로 지난달 5일 찰스 프린스 최고경영자(CEO)가 물러났고, 재무장관 출신인 로버트 루빈 경영위원회위원장이 잠시 그 자리를 대행하기도 했다. 자금 사정도 말이 아니다. 얼마 전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 국부(國富)펀드’에서 75억 달러를 긴급 수혈받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팬디트는 선임 발표가 나온 직후 “경영 전략을 다시 점검하고 사업구조를 단순화하며 실현 가능한 목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서브프라임 파고’ 헤쳐 나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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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티그룹의 주요 주주인 샘 어드바이저스 CEO 윌리엄 스미스는 “팬디트가 신중하기는 하지만 씨티그룹의 CEO감은 아니다”고 혹평했다. 종업원 30만 명을 거느리고 100여 개 국가에 진출해 있는 거함을 이끌기에는 그릇이 좁다는 것이다. 시장의 평가도 여기에 편승해 이날 씨티그룹 주가를 4.43%나 끌어내렸다. 1.54달러 떨어진 33.23달러로 밀린 것이다. 그 결과 주가는 연초에 비해 거의 40%나 하락했다.

이에 앞서 세계 최대 증권사 메릴린치도 서브프라임 사태로 스탠리 오닐 CEO를 해고하고 후임으로는 존 테인 뉴욕증권거래소(NYSE) CEO를 선임했다. 그러나 그때 시장의 평가는 괜찮았다. 사실 씨티그룹도 테인을 염두에 뒀으나 메릴린치에 선수를 빼앗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 뒤 도이체방크 CEO인 요제프 아커만에게도 접근했으나 거절당했다고 한다.

이제 팬디트의 어깨엔 위기의 금융 거함을 안전지대로 끌어낼 임무가 놓여 있다.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나그푸르에서 태어난 그는 1973년 모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업가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왔다. 16세에 컬럼비아대학에 입학할 만큼 똑똑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에서 전기공학으로 학사와 석사를 마친 뒤 재정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뒤 인디애나대학에서 강의를 하다 모건스탠리에 입사해 뉴욕 월가로 진출했다. 그는 영리하고 신중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전했다.

팬디트는 2005년 모건스탠리 사장에서 물러났다. 22년간 몸담았으나 당시 필립 퍼셀 회장과의 권력싸움에서 밀려나 회사를 떠나게 된 것이다. 그 뒤 헤지펀드인 ‘올드 레인 파트너스’를 만들었고, 이 회사가 올 7월 씨티에 인수되면서 그룹에 합류했다. 그리고 5개월 만에 씨티그룹의 최고사령탑 자리에 오른 것이다. 그룹에 들어와 그는 헤지펀드와 사모펀드 쪽에서 두각을 드러냈으며 점차 모기지 분야로 영역을 넓혀왔다.

손해용 기자

◆씨티그룹=195년 역사를 지닌 세계 최대의 종합금융그룹사. 자산 규모 2조 달러, 고객 수는 2억 명에 달한다. 은행은 물론 증권·보험·카드 등 소매금융 전반을 아우 른다.

◆서브프라임(sub-prime) 모기지=신용이 낮은 사람에게 높은 금리로 빌려주는 미국의 주택담보대출. 미국의 집값 하락으로 서민 대출자들이 빚을 못 갚게 되자 대출채권이 부실화되고, 관련 채권에 투자한 금융회사·펀드들이 막대한 손실을 보면서 세계적인 신용위기를 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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