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blog] 대만인의 못 말리는 야구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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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대구에 이런 경기장 하나 있으면 좋을 텐데….”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아시아 예선대회가 열린 대만 타이중 인터콘티넨털 야구장. 대회 기간 중 구장을 둘러보고 삼성구단의 한 직원이 한 말입니다.

 인구가 50만 명이 채 안 되는 타이중이지만 인터콘티넨털 구장은 국제규격의 1만4277석을 갖춘 야구장입니다. 250만 인구의 대구 구장은 1만2000명이 만원입니다. 대만은 전국 각지에 이런 경기장을 갖추고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까지 더해 많은 국제대회를 유치하고 있습니다.

이번 대회를 취재하며 느낀 대만 국민의 야구 열기는 이런 시설이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 대만의 500원권 지폐엔 어린 야구선수들이 환호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요, 1968년 대만 홍예초등학교가 일본 최강 와카야마초등학교를 꺾은 것을 기념한 것이랍니다. 2000년 천수이볜 전 총리가 “2001년을 ‘야구의 해’로 선포하겠다”는 선거 공약을 내세웠을 정도니 이쯤 되면 국기(國技)라 할 만하지요.

 한국-대만전이 열린 1일 타이중 인터콘티넨털 구장엔 만원 관중이 들어찼습니다. 경기 내내 “자유(加油)”라는 응원 구호와 “타도 한국”을 목이 터져라 외쳤지만 결국 한국에 2-5로 졌습니다. 그럼에도 경기 직후 대만 TVBS 방송은 네 꼭지에 걸쳐 경기 관련 뉴스를 보도했습니다. 시내 곳곳에 모인 시민들이 대만이 득점할 때마다 환호하는 모습은 2002 한·일 월드컵 때를 연상케 하더군요.

놀라운 것은 그 다음날이었습니다. 한국에 져 김이 빠진 상태에서 자국의 승리가 뻔한 필리핀전에 만원에 가까운 1만2585명이 경기장을 찾았습니다. 3일 일본전은 말할 것도 없었고요. 이기면 이기는 대로, 지면 지는 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를 열렬히 응원하고 진정으로 야구를 즐겼습니다. 한국이 일본에 진 다음날 필리핀 전엔 그 많던 한국 응원단은 간 데 없고 관중석엔 그야말로 ‘관계자’만 남아 있더군요.

대회 전 궈타이위안 대만팀 감독은 11월 자국에서 열린 야구 월드컵에서 8강에 머무른 책임을 지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는 소식입니다. 대만인들의 꿈은 국기인 야구에서 올림픽 메달을 따는 거랍니다. 그런데 한국에마저 번번이 패하니 얼마나 안타까울까요.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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