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여성 전용 선거구까지 만든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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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나라당이 권역별 여성전용선거구제를 당론으로 확정했다. 민주당과 열린우리당도 적극 추진 의사를 보이고 있다. 이대로라면 이번 총선에서 이미 26석의 여성 의석을 확보한 셈이다.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는 여성계의 오랜 염원이었다. 현 16대 국회의 여성의원 비율은 5.9%로 세계 여성국회의원 평균비율인 15.8%에 한참 모자란다. 기초의회(2.2%), 기초단체장(0.8%) 등은 더욱 형편없다. 이런 현실 때문에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는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15%는 돼야 한다고 권고하기도 했다.

정치의사결정 과정에서 여성들의 참여가 중요한 것은 사회가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고 바르게 발전해 나가기 위함이다. 특히 우리 생활을 규율하는 크고 작은 법들을 만들고, 행정부의 살림을 감독하는 국회는 국민참여의 최고봉으로서 균형있는 시각을 반영해야 한다. 남성들만의 무대였던 정치권이나 국회가 지연과 학연을 고리로 '끼리끼리'의식으로 똘똘 뭉쳐 탈법과 위법까지 서로 눈감아 주는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다. 이런 점에서 부정적인 네트워크에 영향을 덜 받고, 구습(舊習)에 덜 젖은 여성들이 정치에 헌신한다면 변혁의 새 바람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이번 총선에 여성 진출이 많아지기를 우리는 바란다. 그러나 권역별 여성전용 선거구제는 도를 넘었다. 이는 특혜 차원을 넘어 평등선거의 원칙은 물론 대의제 자체를 왜곡시킬 수 있다. 여성만 출마하는 선거구라니 어떻게 이런 초헌법적인 발상을 할 수 있는가. 편법에 의해서라도 여성의원 숫자를 부풀리자는 것은 오히려 여성의 발목을 잡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 또 여성계를 겨냥한 정치권의 도를 넘는 구애일 수도 있다.

이미 우리에게는 제도적으로 소수자를 대표할 수 있는 비례대표제가 있다. 각 정당은 비례대표를 여성에게 반 이상 할당토록 되어 있다. 지역공천에서도 여성을 전폭 늘리는 경향이다. 모든 것이 한술에 배부를 수 없다. 특히 사회문화와 관련된 제도의 급격한 변화는 오히려 갈등과 긴장만 불러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