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농업'이 아닌 '농촌' 대책을 세워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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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이 어제 국회를 통과했다. 지난해 7월 8일 국회에 제출된 지 7개월 만에, 세차례 무산 끝에 겨우 이뤄졌지만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국 중 FTA를 전혀 체결하지 못한 두 나라 중 하나라는 오명에서 벗어났다는 상징적 의미뿐 아니라, 칠레를 발판으로 중남미 시장에 적극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했다는 실리도 챙길 수 있게 됐다. 일본.싱가포르 등과의 FTA 협상에도 탄력이 붙게 됐다.

그러나 지난 7개월의 과정을 되돌아 보면 우리 사회가 국익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내는 데 얼마나 서툰지를 새삼 절감하게 된다. 농민단체와 농촌 출신 의원들의 반대는 예상됐던 일이다. 그런데도 여야 지도부는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고, 정부 역시 국회에서 알아서 처리해주기만 바라는 모습을 보여왔다. 결국 사회 각계에서의 비판이 거세지고, 정부가 추가로 농업 지원책을 내놓은 뒤에서야 비로소 비준안이 처리되는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

이번 FTA 처리 과정은 또 농업 개방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가를 다시 한번 보여줬다. 우루과이라운드(UR) 이후 지난 10여년 동안 수십조원이 농촌에 들어갔지만 농촌 사정은 개선되지 않았고, 그 결과 농민 불신만 커졌다. 정부가 앞으로 10년 동안 농촌 살리기에 1백80조원을 지원하기로 한 정책은 '농업 살리기'보다 '농촌 살리기'에 주력해 실질적인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농민단체도 반대만 할 게 아니라 개방 상황에서 농촌이 살아갈 수 있는 방책을 찾아내는 데 함께 노력해야 한다.

칠레와의 FTA 체결은 시작에 불과하다. 일본 등과의 FTA 추진에는 더 큰 반대가 예상된다. 그렇다고 수출로 먹고 사는 처지에서 전 세계 교역량의 45%가 FTA 체결국 간에 이뤄지고 있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 정부는 FTA의 필요성과 득실을 분명하게 밝히고 관련 이해집단에 충분한 대안을 제시해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지금부터 강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