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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2000>6.비누-로마시대 제물로쓴 羊기름서 힌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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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고대 로마인들이 어느날 사포(Sapo)라는 언덕에 올라가 제단을 만들고 양을 구워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제사의 뒷정리를 맡은 한사람이 양이 타면서 재에 떨어진 기름덩이들을 집으로 가져가 물통에 집어넣었는데,이 물에서 빨래가 아주 잘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이후 로마인들은 재가 섞인 기름덩이들을 사포라고 불렀고,그동안 목욕하거나 빨래할 때 사용하던「곰삭은 오줌」대신 이를 사용했다.오늘날 비누(Soap)의 어원(語源)에 관한 이야기지만,실제 비누의 기록은 이보다 훨씬 앞선 기원전 3천년께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인류가 발명한 대부분의 화합물들이 일천(日淺)한 역사를갖고 있는데 비해 비누의 역사가 이처럼 오래일 수 있는 것은 식사준비때마다 「기름과 재」의 조우(遭遇)기회가 그만큼 많았기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비누의 정의는「유지(油脂)가 나트륨이나 칼륨같은 알칼리물질과 반응해 생성된 지방산」인데,이 물질의 계면활성제(界面活性劑)기능으로 때가 잘 빠지게 된다.
대부분의 물질은 친수성(親水性:물과 결합하려는 성질)과 친유성(親油性:기름과 결합하려는 성질) 둘중 하나의 성질을 띠는데성질이 서로 다르면 경계지역(계면)을 만들어 서로 섞이지 않으려 하는 힘(표면장력)을 갖게 된다.그런데 계럴 활성제는 친수성과 친유성을 동시에 갖고 있어 이 두 물질 사이의 표면장력을무력화하고 두 물질의 분자가 서로 섞이도록 하는 것이다.
〈그림참조〉 즉 섬유의 올사이에 끼어있는 때(주로 지방.단백질.먼지등으로 이뤄짐)성분은 물리적인 힘(방망이질이나 빠른 물살,물방울이 터지는 힘)으로도 떨어지지만,계면활성제를 넣으면 이것이 때의 분자들을 떼어내 쉽게 빨래가 되는 것이다.
과거에는 쌀겨.쌀뜨물.콩가루.밀가루 등이 세제로 사용됐는데,이와 관련해 제일제당 생활화학기획팀 제구환(諸球煥)부장은 『이들 성분의 표면에 미세한 구멍이 많아 지방을 흡착하는데다 그속에 천연 계면활성제성분이 미량 섞여 있기 때문』이 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들 성분은 과거 비누대체제로 활발히 사용됐고,이를 상대적으로 구하기 쉬웠던 「방앗간집 딸」들이『피부가 고와 아름답다』는 평을 동양(변강쇠전)과 서양(슈베르트 가곡)에서 각각 듣는 아이러니를 낳았다.
조선(朝鮮)시대에는 궁중이나 양반집 규수들이 녹두가루나 창포가루를 「조두박」에 담아 썼고,『더러움을 날려보낸다』는 뜻에서이를「비루」(飛陋)라고 불러 오늘날 「비누」의 어원이 됐다.
동서양에서 오줌이나 잿물(가성소다:수산화나트륨)을 세제로 사용한 것은 「계면활성제 기능」때문이라기보다는 오줌의 암모니아,잿물의 나트륨등이 강한 알칼리성질이어서 지방을 분해시켰기 때문이다. 기름과 잿물을 섞는 전통적인 비누제조방법은 8세기들어 사보나등 지중해연안에서 올리브와 해초기름을 원료로 고급비누를 생산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했으나 비싼 가격탓에 사용층이 한정됐었다.그리고 잿물을 이용하는 것이어서 제조가 번거로운데다 비누가깨끗하지 못한 단점이 있어 천연소다를 대신 사용하기도 했으나 이 또한 가격이 비싼 단점이 있었다.이후 비누는 큰 기술적 진보없이 이어지다 1790년 프랑스귀족의 주치의였던 르블랑이 소금과 석회석.숯을 이용해 인공 소다(탄산 나트륨)를 매우 싼값으로 만들어내는 발명을 하면서 대중화되기 시작했다.1811년에는 프랑스의 화학자 슈브뢸이 비누의 화학적 조성 성분까지 밝혀내 비누는 도약기를 맞았다.20세기 들어서는 독일의 헨켈사와 미국의 P&G社를 중심으로 대 량생산체제가 갖춰졌고,이후 터진2차대전은 독일에서 합성세제의 탄생을 낳았다.
전쟁이 치열해지자 당시 히틀러는 폭약인 니트로글리세린의 원료로 쓰이는 동물성기름을 확보하기 위해 동물기름을 이용한 비누제조금지를 명령해 비누의 품귀현상이 벌어졌고,이때문에 독일의 과학자들은 비누의 대체제로 석유의 성분을 합성한 세 제를 만들어낸 것이다.당시 독일군이 유대인의 시체를 태워 비누를 만든 것도 이같은 사정때문이었다.
***프랑스서 대량생산 길터 국내에서는 19세기 프랑스신부 리델이 가져온「샤봉」(비누의 또다른 말인 사분의 어원으로 추정됨)이라는 비누가 처음이며,일제를 통해 가성소다(양잿물)가 들어오면서 수공업형태로 비누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물자부족탓에 등겨기름에다 가성 소다를 섞어 만들다 보니 거칠고 검은 형태에지나지 않았는데 이를 석감(石검:일부지방에선 사투리로 새끼미)이라 불렀다.
이후 50년 동산유지,54년 애경유지등이 세워져 오늘날의 비누를 생산해냈고 66년부터는 알킬벤젠을 수입해 만든 가루비누인럭키의 하이타이,애경의 크린업등이 등장,세탁기보급확대에 힘입어본격적인 합성세제시대를 열었다.
요즈음엔 환경보호추세에 발맞춰 비누는 물론 가루비누도 모두 생분해도가 높은 천연성분으로 바뀌고 있는 상태며,「미래의 세제」로 미생물.초음파.효소등을 이용한 세탁제제가 활발히 연구되고있다. 〈李孝浚기자〉 ***다음회는 「시계」편이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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