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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 전쟁’ CF로 마음을 흔들어라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SUNDAY

2007년 대선 광고의 금기어는 ‘버스’다. 어느 후보 진영이나 마찬가지다. 내부 설전을 벌이다가도 “그런 광고를 하면 버스 된다”는 말 한마디면 상황이 끝나버린다. 지난 대선의 학습효과다.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난폭운전으로 사고를 낸 버스와 안전운행을 하는 버스를 대비한 TV 광고를 내놓았다가 ‘노무현의 눈물’로 맞선 민주당에 완패를 당했다. 현재 이른바 ‘빅3’인 이명박·이회창·정동영 후보 측 광고 담당자들은 모두 5년 전의 ‘눈물’을 상대로 경쟁을 하고 있다. 유권자들의 눈높이가 그만큼 올라갔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3000원짜리 국밥을 20번이나 바꿔가며 먹었다. 첫 TV 광고인 ‘욕쟁이 할머니’편을 찍으면서다. 뜨끈한 김을 피어오르게 하기 위해 몇 숟갈 뜰 때마다 다시 데웠다. 정병국 미디어홍보단장은 “일부러 저녁을 안 드시게 하고 촬영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뭐든지 잘 먹는다고 알려진 이 후보도 나중에는 “(이젠) 맛이 많이 좋진 않네”라고 했다고 한다.

광고를 찍은 송황 감독은 “전국의 욕쟁이 할머니를 다 뒤졌는데 상당수가 이미 돌아가셨더라”며 “섭외한 할머니도 평소엔 질펀하게 욕을 잘하더니 막상 이 후보가 오자 그래도 표현이 약간 순화됐다”고 말했다.

광고 효과는 별도로 하고 현재까지 나온 대선 광고 중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광고다. 우선 할머니가 지지율 1위 대선 후보에게 “밥 처먹었으니께 경제는 꼭 살려라잉∼ 알긋냐”라고 하는 장면이 눈길을 끌었다. 특히 광고에 등장한 할머니가 촬영이 이뤄진 서울 낙원동 국밥집이 아닌 강남에서 실내 포장마차를 운영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의외로 이 후보 측 홍보기획팀은 공방이 벌어진 것이 싫지만은 않은 기색이다. 한영만(45)씨는 “논쟁이 벌어진 것은 그만큼 관심을 끌었다는 뜻”이라며 “화제 유발조차 안 되는 다른 후보 측 광고들은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제작비가 아까울 정도”라고 주장했다.

이 후보 측의 광고·홍보 전략은 한씨를 포함해 이우찬(49) 홍보기획팀장과 박승하(44)·황부영(43)씨 등 제일기획 출신 4인방의 머리에서 시작된다. 대부분의 홍보물에 등장하는 ‘실천하는 경제대통령’ ‘국민성공시대’라는 말도 이 팀에서 나왔다. 카피라이터 출신의 한씨가 슬로건·TV 광고 등의 모든 표현을 만들었고, 브랜드 전략가인 황씨가 개념을 정리했다. 박씨는 광고 기획 및 코디네이터, 이 팀장은 총괄 조정을 맡았다. 박씨와 황씨는 “이명박 후보를 하나의 상품이 아닌 ‘브랜드’ 차원에서 접근한다는 것이 우리 팀의 전략”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 후보 측은 이르면 2일부터 후속편을 내보낸다는 계획이다. 이 후보가 영남지역을
방문했을 때 “정말 살기 힘드니 좀 살려주이소”라며 눈물을 쏟았던 한 시민에게서 힌트를 얻은 내용이 채택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이 후보가 자신의 부족한 점을 고백하는 형식의 광고를 내보내는 안도 검토되고 있다. 2002년의 ‘바보 노무현’과 비슷한 전략이다. 그의 실천력을 내세우기 위해 이 후보의 신체 부위 중 한 부분을 강조한 내용과 이 후보가 당선됐을 경우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암시하는 안도 논의 중이다. BBK 관련 대응은 수사 결과에 따라 유동적이다. 이 후보 측은 신문 광고의 경우 대부분 TV와 같은 내용으로 가기로 했다. TV에서 본 내용을 신문에서 다시 보게 해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겸손을 강조하고 있는 무소속 이회창 후보는 광고도 같은 원칙으로 만들고 있다. TV 광고 1편인 ‘알았습니다’에서도 대리운전 기사, 교사, 소녀가장을 등장시킨 뒤 “국민의 마음을 알았습니다”라며 낮은 자세를 취했다. 이 후보 측의 광고 전략은 1997년 대선 때부터 그를 도왔던 석철진(45)씨가 주도하고 있다. 석씨는 “과거 같은 위인전 스타일의 광고가 아니라 이 후보의 진정성을 부각시키려 한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실제로 경제·도덕성 등이 회오리바람에 휘말려 날아간 뒤 자신이 ‘짠’ 하고 등장하는 내용의 콘티를 보고 “이건 아니다”라고 반대했다고 한다.

TV 광고 2편은 ‘국민과 함께 열어가는 창의 비전’이라는 제목으로 각계각층의 국민
이 이 후보와 마음을 나누는 내용을 담는 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이 후보 이름에 들어가는 창(昌)이란 글자가 창(窓)과 발음이 같은 것을 이용해 창문을 여는 동작을 형상화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정동영 후보 측은 가장 많은 종류의 신문·TV 광고를 쏟아내며 물량전을 펼치고 있다. 신문 광고는 1위인 이명박 후보에 대한 철저한 네거티브 전략으로 가고 있다. 이 후보가 얼굴에 연탄 가루를 바르는 사진을 실은 뒤 ‘군대는 안 갔지만 위장 하나는 자신 있다’고 공격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네거티브 광고엔 공격자의 이미지가 나빠지는 역효과도 따른다. 이에 대해 정 후보 측 윤흥렬 홍보본부장은 “정책 광고도 여럿 검토했지만 실무진에서 ‘거짓말만 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돼선 안 된다는 것이 최대의 정책’이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정 후보 측은 반면 초반 TV 광고에서는 그의 인간적 면모를 부각시키는 쪽에 집중했다. 1편 ‘행복을 꿈꾸는 소년’에서는 어려웠던 성장기를 보여준 뒤 정치 초년생 시절 그가 연설 도중 돌아가신 아버지를 언급하다 감정에 북받쳐 말을 잇지 못하는 장면으로 마무리했다. 김희경(38) 광고기획팀장은 “언변이 탁월한 정 후보에게 이런 모습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2편 ‘안아주세요’는 지친 이웃들이 서로를 껴안으며 격려하는 내용이다. 정 후보 측은 기본 컨셉트를 ‘내가 안아줄게요’로 할지, ‘함께 안아주세요’로 할지를 놓고 논란을 벌였다고 한다. 결국 보다 겸손한 표현인 후자가 채택됐다.

그러나 정 후보 측은 1일 방송된 3편 ‘힙합 대화’에서는 젊은 힙합가수들을 등장시켜 “위장취업 뉴스 봤어∼ 주가조작 들었어∼ 앞에서는 성공을 얘기하지, 뒤에서는 세금을 빼돌리니∼”라는 내용의 랩으로 다시 이명박 후보에게 칼날을 세웠다. 김희경 팀장은 “등장하는 래퍼 중 한 명이 국악인 김덕수(사물놀이)씨의 아들”이라고 귀띔했다.

현재의 대선 광고전을 전문가들은 어떻게 평가할까. 익명을 요구한 한 대형 광고회사의 간부는 세 후보의 TV 광고에 대해 “정동영 후보의 1, 2편 광고는 후보에 대해 명확한 이미지를 심어주지 못하고 그저 보기에만 좋은 광고”라고 비판했다. 이회창 후보 광고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담으려다 보니 복잡해서 남는 게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나마 이명박 후보의 광고가 컨셉트가 명확한 편이지만 욕쟁이 할머니만 너무 부각되고 이명박 후보는 내내 밥만 먹다 보니 일방적 얘기로 비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중앙대 이명천(광고홍보학) 교수는 정 후보의 신문 광고에 대해 “네거티브 광고를 한다고 유권자의 지지성향을 바꾸기는 어렵다”며 “자기 지지층 다지기 이상의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정책 광고전이 되려면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현행 선거법상 방송 광고가 1분 이내 30회로 제한돼 상대적으로 긴 시간이 필요한 정책 광고를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외대 김춘식(언론정보학) 교수는 “30분 시간 총량제로 하면 각 후보들이 정책·감성 광고를 길이에 따라 적절히 섞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선하 기자 odinele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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