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파병'이 보내는 긍정신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한국 국회가 지난 13일 이라크 파병안을 통과시킨 데 대해 워싱턴은 안도감과 함께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다. 한국 내에는 이라크 전쟁에 반대했기 때문에, 혹은 반미 감정으로 인해 미국을 돕기 싫어 파병안 통과에 불만을 나타내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병은 결국 한국민과 한국의 이익에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우선 이번 결정은 냉전 종식 이후 한국이 처음으로 동북아 지역을 벗어나 국제무대로 활동범위를 넓히는 것이란 의미에서 한국 외교사의 전환점이 될 것이다.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이고 전세계를 상대로 무역을 하는 한국은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경제적 지위에 걸맞은 기여를 해야 한다. 또 한국군은 다른 나라 군대와 공조를 통해 군사적 역량을 시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군은 국제사회에서는 정예부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베트남전 이후 전투 역량을 평가받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1만8천명 이상의 한국군이 이라크 파병부대에 지원했다는 사실은 한국 군인들의 의지와 용기와 헌신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이 이라크와 중동지역에서 얻을 경제적 이득도 크다. 한국의 경제 전문가들은 앞으로 몇년간 계속될 이라크 복구사업의 경제적 효과를 8백50억달러(약 1백2조원) 정도로 분석했다. 한국이 이라크 복구사업에 일찌감치 참여함으로써 한국 기업들은 이라크에서 계약을 따낼 가능성이 훨씬 커졌다. 동시에 한.미 갈등을 의식해 한국 투자에 부정적 인식을 가졌던 미국과 다른 나라 투자자들도 파병을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일 것이다. 한국이 경제회복과 성장을 위해 많은 외국 투자를 유치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중요하다. 한.미관계가 앞으로도 계속 튼튼할 것이라는 확신은 투자자들로 하여금 한국경제의 미래에 대한 안도감을 줄 것이다.

이라크 파병은 한국이 에너지를 좀더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데도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은 전체 소비 에너지의 절반 정도를 석유에 의존하고 있고, 그중 70% 이상을 중동 지역에서 수입한다. 중동의 안보와 안정에 기여함으로써 한국은 단지 미국의 역할에만 의존하는 차원을 넘어 스스로 중요한 석유자원의 안정화에 일정부분 참여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한국은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보다 확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국회에서 1백55대50으로 파병안이 통과됐다는 사실은 한국 민주주의에도 함축하는 의미가 크다. 떨어지는 지지율 때문에 리더십을 시험받던 노무현 대통령에게 파병안 통과는 정치적 승리를 안겨준 것이다. 외국인들에게서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FTA) 같은 중요한 사안도 처리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곳으로 평가받아 왔던 한국의 국회도 이번 결정을 통해 잃었던 신뢰를 회복할 실마리를 마련한 측면도 있다.

마지막으로 파병안 통과는 한.미 간의 군사적 유대를 강화해 더 나은 동맹을 위한 징검다리가 될 것이다. 최근 한.미 동맹은 한국민의 반미감정 등과 맞물려 실효성을 의심받아 왔다. 하지만 미국은 파병안 통과를 상징적 의미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파병 조치는 한.미 동맹 재조정 과정에서 불거진 분열과 서로가 받았던 감정의 앙금과 상처를 치유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할 것이다.

한.미 동맹은 반세기 전 한.미 양국 모두의 필요에 의해 결성됐고 서로 상대방을 위해 공헌하고 희생도 치렀기 때문에 오랜 세월을 견뎌왔다. 미국은 한국전쟁 때 5만명 이상의 미군이 숨졌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고 있다. 하지만 한국도 미국을 돕기 위해 베트남의 정글 속으로 30만명 이상의 군인을 보냈다는 사실은 간간이 망각되곤 한다.

한국의 이라크 파병은 한.미 동맹이 아직도 굳건하고, 잘 짜여 있으며, 활력을 갖고 있음을 확인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미국인들은 한국이 국제사회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공헌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것을 격려해야 한다. 한국인들도 이라크 재건을 돕기로 한 스스로의 결정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면서 국제사회에서 마땅히 해야 할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해야 한다.

발비나 황 미국 헤리티지재단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