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읽기] 동물과 대화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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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만물의 영장’이란 말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편견과 이기심, 다른 종(種)에 대한 배타적 독선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 이외의 것들에 대한 철저한 상대화와 일방적 분류의 소산이다. 하지만 대상에 대한 지시와 규명을 일차적 기능으로 하는 언어는 그것을 알아듣지 못하는 입장에서는 폭력이 될 수 있다. 무언가를 인간의 언어로 명명하고 재단할 때, 명명 당한 것들의 실체적 진실은 인간의 그림자 아래 묻힌다.

산악고릴라들의 친구이자 따뜻하고 엄정한 보호자였던 미국의 동물 생태학자 다이앤 포시를 암살한 건 인간의 그러한 가학성인지도 모른다. 그는 1985년 12월 26일 연구소 숙소에서 살해당한 채 발견되었다. 범인도 범행동기도 아직 오리무중이다.

『안개 속의 고릴라』(승산)는 삶의 모든 것을 고릴라에게 바친 체험으로 씌어진 독보적인 동물 생태 보고서이다. 다이앤 포시는 무려 15년 동안 중앙아프리카의 화산지대에서 산악고릴라의 행동을 연구했다. 그가 처음 산악고릴라에게서 매력을 느낀 건 1963년이었다. 중앙아프리카의 자이르(현재 콩고민주공화국)의 비룽가 국립공원 내부에서 산악고릴라 무리를 만난 그는 그들에게서 특별한 느낌을 받았다.

“고릴라들은 우리를 제대로 보려고 나무 위로 올라갔다. 마치 주의를 끌기 위해 경쟁하는 것처럼 어떤 고릴라들은 입을 크게 벌리고, 음식을 먹는 것 같은 행동을 하고, 나뭇가지를 부러뜨리거나, 가슴을 두드리는 일련의 행동들을 했다. 과시행동을 하고 나서 고릴라들은 그들의 쇼가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판단하려고 하는 양 우리를 기묘하게 쳐다보았다.”

다이앤 포시는 고릴라들의 적극적 의사표현행동에서 어떤 기원의 냄새를 맡았다. 이후 그는 일생을 바쳐 고릴라들의 행동을 연구했다. 인간에 가장 가깝다는 영장류의 행동양식을 밝히겠다는 학문적 욕구가 우선이었지만, 고릴라들과 생활하면서 그는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었으나 문명화되면서 퇴화해버린 생물로서의 본성들을 새삼 깨닫고 터득했다. 하지만 그의 연구가 인간의 편에서 고릴라에 대한 일방적 편애를 쏟아 부었기 때문에 값진 것이 아니다. 그가 아름다운 이유는 인간의 입장이 아닌 고릴라 눈에 비친 인간 모습에 대한 겸허한 성찰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비참한 죽음이 더욱 애절해진다. 그는 고릴라의 생태를 기록했지만, 고릴라들은 다이앤 포시의 인생을 다시 쓴 셈이다. 그들의 얼굴, 그들의 표정을 통해.

그런 측면에서 같이 읽어볼 만한 책은 미국의 동물학 박사 템플 그랜딘이 캐서린 존슨이 함께 쓴 『동물과의 대화』(샘터)이다. 이 책이 흥미로운 점은 두 공저자가 모두 자폐증과 관련 있다는 사실이다. 템플 그랜딘은 그 자신이 자폐증을 극복한 경험이 있고, 캐서린 존슨은 자신의 세 아들 중 두 아이가 자폐증을 앓고 있다. 때문에 이 책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폐적 성향을 관찰하고 치유하는 방식으로 동물들의 의사소통 체계에 초점을 맞춘다.

이들에 의하면 동물의 뇌 구조는 언어 능력이 부족한 자폐환자들의 그것과 가깝다. 다시 말해 동물들과 대화하는 법을 알게 되면 자폐증상을 이겨내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지론이다. 개인의 불행과 고통에서 출발한 연구인 만큼 이들은 동물의 행태를 건조하게 추적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인간의 고통과 동물의 심정이 편협하게 그어놓은 종(種)의 경계 안에 갇혀 따로 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들은 밝혀낸다. 동물을 이해하는 게 인간을 이해하는 첩경이라는 것. 이건 문자가 발명되기 이전부터 이행되어온 자연의 섭리이자 균등한 법칙이다. 당신의 행동에 반응하는 동물들. 그들은 인간의 타자(他者)가 아니다. 그들 자신일 뿐이다.

강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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