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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석 달 앞 … 뒤로 물러서라 했건만"…스러진 스물아홉 '용짱의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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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열기가 너무 세 접근조차 어려웠지만 윤 소방사는 빨리 불을 꺼야 한다며 가장 먼저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는데…."

28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효자원 장례식장. 27일 마장면 덕평리 CJ 이천공장 화재현장에서 진화 작업 중 순직한 이천소방서 관고119안전센터 소속 윤재희(29.사진) 소방사의 빈소에서 김정근 센터장은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옆에서는 윤씨의 어머니 심금순(55)씨가 아들의 영정을 쓰다듬다가 실신했다. 심씨는 "대한민국 최고의 소방관이 되겠다고 해 놓고서…이렇게 가다니. 에미는 앞으로 어떻게 살라고…"라며 울부짖다가 쓰러졌다.

아버지 윤기섭(60)씨는 "재희의 어릴 적 꿈은 경찰이었으나 대학 졸업(중부대 경찰행정학과) 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데는 소방관이 최고라며 진로를 바꿨다"고 밝히며 눈물을 삼켰다.

2005년 1월 소방관으로 임용된 윤씨는 간호사와 내년 2월 24일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다.

그는 언제나 가장 먼저 불길로 뛰어드는 용감한 소방관이었다. 그래서 동료들은 그에게 '용짱'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그는 이날도 화재 현장에 출동하자마자 소방호스를 들고 불길을 잡는 선봉장 역할을 했다.

이천소방서는 윤 대원이 결혼을 앞두고 있어 뒤에서 화재를 진압하는 역할을 맡기려 했다. 하지만 윤 대원은 "시민을 구하는 소방대원은 내 몸보다는 시민의 목숨을 더 중시해야 한다"며 앞으로 뛰어나갔다고 한다.

이천소방서 이정규(54) 진압대장은 "윤 대원이 '혹시 건물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며 먼저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경기도 이천소방서에 화재 신고가 접수된 것은 27일 오후 3시38분. 윤 소방사는 관고 119안전센터 직원 17명과 함께 화재 발생 후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 그는 평소대로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진 건물이 무너지는데도 물러서지 않고 건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대원들은 "정말 열심히 불길을 잡으러 나섰다"고 말했다.

불길이 워낙 거세 이천과 여주 등 7개 소방서 170여 명의 소방관과 소방헬기 1대, 소방차 35대가 동원됐지만 진화작업은 더디기만 했다. 겨울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데다 공장에 기름과 종이박스가 많아 유독가스도 심했다.

지붕과 철제 빔이 무너졌지만 윤 소방사는 후퇴하지 않았다. 동료들은 "워낙 불길이 세 잠시 물러나자고 했지만 윤 소방사는 계속 진압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소방대원들은 7시간의 사투 끝에 오후 10시30분에 불길을 완전히 잡았다.

"기진맥진한 몸을 추슬러 소방서로 돌아왔는데 윤 소방사는 보이지 않았어요."

소방대원들은 다시 출동했다. 밤이 늦었지만 "제발 살아 있으라"고 빌며 밤샘 수색작업을 했다. 하지만 화재 현장(6925㎡)이 워낙 넓어 수색이 쉽지 않았다.

해가 뜨고 연기가 거의 사라진 28일 오전 8시 대원들은 무너져 내린 건물 벽면 사이에 끼인 윤 소방사의 시신을 발견하고 통곡했다.

경기도 소방본부는 "윤 대원은 건물 내부에서 화마와 싸우다 갑자기 붕괴된 지붕과 철제 빔에 깔려 빠져나오지 못해 순직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윤 소방사는 충북 진천 출신으로 부모와 형(32), 여동생(27)이 있다. 소방관 임용 후 직장과 가까운 이천 시내 원룸에서 자취를 했다.

경기도 소방본부는 순직한 윤 소방사에게는 소방교로 1계급 특진과 함께 옥조근정훈장을 추서키로 했다.

영결식은 이천소방서장으로 30일 오전 9시40분에 열리며 대전 현충원에 안장된다.

한편 이날 화재 현장에 출동했다 돌아오던 물탱크 차량을 고속도로에서 정비하던 여주소방서 119 안전센터 최태순(38) 소방교도 교통사고로 숨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최 소방교는 27일 오후 11시35분쯤 화재 진압 후 여주소방서로 돌아오던 물탱크 차량이 영동고속도로 하행선 이천 나들목 인근에서 고장이 나자 119 순찰 차량을 몰고 물탱크 차량을 정비하러 갔다가 5t 화물트럭에 치여 숨졌다.

이천=정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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