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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노트] 광화문, 복원보다 보존 고민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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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보존인가 복원인가. 문화재청의 ‘경복궁 광화문 및 기타 권역 복원 정비사업’이 봉착한 난제다. 태조 4년(1395) 광화문 창건 당시의 흔적(사진)이 발굴되면서부터다. <관련기사 11월 2일자 24면>장한 발굴 성과지만 이 옛터 위에 광화문을 새로 지을 작정이었던 문화재청은 편치 않다. 27일로 예정됐던 현장공개도 연기했다.

문화재청은 경복궁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광화문을 원 위치에 원래 모습대로 새로 짓겠다며 올해 광화문을 철거했다. 이어진 발굴 조사에서 예기치 않은 성과가 나왔다. 지난 9월 고종 때 광화문터가 그대로 드러난 데 이어 그 70cm 아래에 태조 때의 원래 광화문 자리까지 나타난 것이다. 창건 당시 광화문은 동서 27m, 남북 9.6m로 고종 때의 31×11.5m보다 작은 규모로 세워져 있었음이 확인됐다. 이번 발굴로 광화문의 변화상을 한 눈에 알 수 있게 됐다.

조선시대 정궁(正宮)인 경복궁의 정문으로 14세기 창건된 광화문은 네 번 바뀌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고종 2년(1865) 경복궁 재건 때 함께 중건됐다. 일제 때 조선총독부 청사를 신축하면서 건춘문 북쪽(국립민속박물관 정문 자리)으로 옮겨졌고 한국전쟁 때 피폭으로 문루가 소실됐다. 올해 철거된 광화문은 1968년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로 재건된 것이다. 당시 도로와 주변 건물들에 맞추느라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이번 발굴 현장을 확인한 자문위원들부터 광화문 복원 사업에 회의를 보이고 있다. 조유전 토지박물관장은 “유물 한 점만 나와도 보존을 고민하는 게 발굴하는 이들의 마음”이라며 “생생한 옛터가 그대로 드러났으니 복원보다는 보존을 우선 고심할 단계”라고 말했다.

그러나 문화재청 관계자는 “광화문의 위치가 잘못됐다 해서 제모습 찾기 사업을 시작한 것이고, 발굴을 통해 정확한 위치를 확인한 것”이라며 “과거의 유구 뿐 아니라 미래의 광화문 짓는 것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발굴의 목적을 위치찾기에 한정지은 것이다.

애초 복원 공사부터가 성과주의에 매몰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발굴도 이뤄지기 전에 2009년 완공을 목표로 고종 때 사진을 근거로 설계까지 확정해 두고 시작했기 때문이다. 난개발 속에 훼손되는 문화재 보존에 앞장서는 것이 문화재청의 할 일이다. 복원에 앞서 광화문 옛터의 보존을 고심하는 것이 마땅한 수순이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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