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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고함(孤喊)] "일본이 대포동에 호들갑 떠는 건 코믹 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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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요즈음 도쿄(東京)대에서 학생들 가르치는 재미가 어떠한가?

'일본의 양심' 구로즈미 마코토 도쿄대 교수

"재미없다."

-왜 그런가?

"대학이 대학 본래의 존재 이유를 상실해 가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현재의 도쿄대는 당신이 다녔던 도쿄대가 아니다. 경제학이 모두 경영학으로 바뀌고 있다. 그 변화의 단적인 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경제란 과거에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의 학문이었고 애덤 스미스도 경제는 인간의 도덕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역설했다. 그러나 지금의 경제란 도덕과 관련 없는 뿌리 없는 돈의 흐름일 뿐이다. 그것을 잘 조작하는 기술을 배우려는 천박한 학생들만 도쿄대 캠퍼스에 꼬여 들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라이제이션을 표방하는 세계적 추세가 아닌가?

"그런 말로 간단히 규정해 버릴 수 없는 국제사회의 복합적 현실이 있다. 동아시아에 있어서 20세기의 모든 근대화.산업사회화의 과정은 오로지 미국과의 관계에서만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개별 국가들의 미국과의 개별적 관계에서 그들의 모든 운명이 결정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과 무관한 제 국가 간의 호상적 관계와 교섭이 증대되고 있다. 예를 들면 도쿄대도 독일어.프랑스어.러시아어과가 문을 닫아야 할 지경이고, 오히려 중국어와 한국어의 인기가 폭증하고 있는 것은 서양의존적 사고가 이제 아시아제국 자체의 관계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세계는 다원화되고 중층화(重層化)되어가고 있는 만큼 역사, 문화, 철학의 인문학적 깊이가 더 요구되고 있다."

-그러한 변화가 동아시아의 미래 운명에 끼칠 영향은?

"궁극적으로는 유럽연합(EU)과도 같은 아시아연합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국가를 초월하는 연합 모델로서 EU는 매우 성공적이다. 그런데 인터넷혁명은 아시아의 연합을 더욱 가시화시킨다. 유로화가 강세를 보이듯이, 최소한 아시아의 화폐도 단일화되어 가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너무 황당한 예언이 아닌가?

"문제는 연합을 가능케 하는 이념이다. EU는 알고 보면 기독교연합이다. 기독교라는 정신세계가 배경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시아연합은 뭘 생각할 수 있을까? 이렇게 말하는 나를 조롱할지 모르겠으나, 나는 아시아연합은 기(氣)연합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너무 형이상학적 담론이 아닌가?

"동양인은 깊은 내면으로부터 기독교문명이 매우 미신적인 수준의 그 무엇이라는 것을 잘 안다. 동양의 근대적 사고를 형성한 요소로서 나는 이(理).기(氣).지(志)라는 세 기둥을 든다. 이(理)는 로고스(이성)적 측면이고, 지(志)는 의욕.의지.모험의 측면이다. 그런데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기(氣)라는 아니마(anima) 즉 생명력이다. 동아시아문명의 근저에 깔린 유교는 결국 기라는 생명력과 합리성을 중심으로 발전해온 사상이다. 아시아연합의 중심으로서 유교가 재해석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당신의 고전학에 대한 관심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유교라면 사람들이 고리타분하게 생각한다.

"그러한 인상의 근저에는 '사상=서양사상'이라는 뿌리 깊은 유로센트리즘이 깔려 있다. 칸트와 헤겔은 현대사회에 아직도 의미가 있는 근사한 사상이고, 퇴계(退溪)나 이토 진사이(伊藤仁齋)는 사상가의 자격이 없다는 생각, 그리고 유교는 사상이 아닌 충효나 의리 정도의 봉건윤리라는 생각,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의 근저에는 일본제국주의의 죄악이 깔려 있다. 일본이 메이지(明治)시대부터 동아시아를 지배하면서 제국주의적 문명론의 소재로서 유교 도덕을 복종의 논리로서 악용해 왔기 때문에 그런 오해가 생겨난 것이다."

-기(氣)와 같은 애매모호한 말로서 아시아의 정치적 연합이 가능할까?

"현대물리학은 유기물과 무기물의 구분을 근원적으로 해소시키는 방향에서 발전하고 있다. 모든 물질을 생명으로서 파악하는 유기체론과 현대과학과 기(氣)와 유교적 합리성은 하나의 개념이다. 그러한 사상으로서 아시아를 연합시키면 가장 바람직한 파워의 축이 잉태될 것이다."

-도쿄대의 윤리학 교수로서 한국 대선을 어떻게 바라보나?

"한국 대선은 세계사의 진정한 프런티어로부터 그 본질적 감각을 상실해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있다. 대선 후보에 대한 가치 기준이 '경제발전'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은 비극이다. 이 지구상에서 이제 '경제발전'이라는 말은 사라져야 한다. 이 지구상의 국가들이 부의 절대적 가치를 증대시킨다고 하는 것은 더 이상 용납되기 어려운 절박한 상황을 초래한다. 경제발전은 환경파괴, 계급격차 등 인간이 이 지구상에서 행복하게 살 수 없는 조건을 만드는 데 기여할 뿐이다. 경제발전을 근원적으로 거부한다는 뜻이 아니라 아주 새로운 개념의 발전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유교는 경제와 도덕을 일치시켜 온 위대한 패러다임이었다. 패도(覇道) 아닌 왕도(王道)를 추구했다."

-일본같이 잘사는 나라의 사상가인 당신이 그런 말을 하면 부자의 자기정당화로만 들릴 텐데?

"왜 인류학이라는 학문이 필요한가? 아프리카의 오지를 미국식으로 잘살게 만들어야 한다는 폭력은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도 역설하듯이 지구온난화 등 환경파괴는 더 이상 이념이 아닌 오늘.내일의 긴박한 현실이다. 모든 나라가 상대적으로 다른 양태의 삶을 추구해야 한다. 일본은 물론 중산층을 확고하게 안정시키는 경제발전을 해왔지만 그러한 모델이 좋다 해도 그리 쉽사리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나긴 역사와 가치의 산물이다. 한국이 경제적 발전을 원한다면 오히려 북조선이라는 위대한 허(虛)의 가능성이 있다."

-좌로 인식되는 개혁 성향의 정권이 졸렬한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에 우적 경향이 한국 사회에 팽배하고 있다. 일본의 우경(右傾) 현상은?

"문제의 핵심에 평화헌법이 있다. 평화헌법 자체가 미국에 의하여 강요된 것이며 그것이 동아시아 문명사에 있어서 일본제국주의의 만행에 대한 깊은 반성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일본의 무력화를 금지하는 평화조항은 절대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후쿠다도 평화헌법을 유지하자는 입장이다. 미국이 세계를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시대에는 세계의 정치적 리더십이 매우 빈곤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리더십 타락의 극치에 부시 같은 패도의 지도자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가 다원화되면서 그러한 지도자는 더 이상 부상하기 어렵다. 미국을 보라! 힐러리, 버락 오바마, 앨 고어 모두가 과거의 리더십과는 수준이 다르다. 김정일도 과거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있고, 일본도 보다 정교한 리더십을 요청하고 있다. 일본의 우파는 일종의 쇼군들이다. 사회적 레버리지가 적으니까 연예나 게임이나 만화 같은 천박한 문화현상을 활용하는 사이비 종교 같은 느낌을 준다. 한국의 우파도 진정한 우파가 아니다. 우파라면 반미 민족주의가 있어야 하는데, 민족주의도 없고 반미는커녕 친미조차 제대로 못 따라가는 친미를 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의 정치적 리더십도 대국적으로 보면 진화하고 있다고 나는 판단한다."

-최근 남북 정상회담은 어떻게 보나?

"북조선이 대포동미사일을 날린 것을 가지고 일본 무력화의 구실로 삼으려고 아베, 아소 같은 지도자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데 사실 대포동미사일은 옆 바다에 퐁당 떨어뜨린 장난감 같은 것이다. 그런 장난감으로 전 세계가 요동친다는 것은 참으로 코믹한 쇼다. 후쿠다 총리까지 북한의 일본인 납치를 가지고 호들갑을 떠는데,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오히려 일본인들이 동아시아의 죄 없는 인민들을 수천 수만 명 납치해 왔다고 생각하는 지성인도 많다. 조선의 위안부는 납치 아니고 무엇인가? 한마디로 이제 그런 냉전시대의 위장된 쇼에서 서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유치한 국제언어를 고급화시켜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북조선을 악의 축이라 말하지만 사실 나는 윤리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북한 사회를 일방적으로 규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념적 경직성을 외부에서 비윤리적으로 규정해야 할 이유가 없다. 미국이나 중국, 일본 같은 강대국들이 실제로 국제사회에서 저질러 온 죄악에 비한다면 북한은 그냥 가난한 나라, 좀 주체적으로 '깡폼'을 잡은 나라에 불과했을 뿐이다. 북한이 나쁜 짓을 했다면 얼마나 나쁜 짓을 했겠는가? 냉정하게 반추해 보라! 단지 한국 사람들에게 북한이 부정적으로 비치는 것은 6.25전쟁을 통해 너무 많은 원한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거시적 문제는 남북한뿐 아니라 전 세계가 책임져야 한다. 6.25전쟁으로 일본은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으며 얼마나 신속히 전후 상처를 복구할 수 있었는가? 이제 인류는 윤리적으로 정직해져야 한다."

-당위적 명령으로만 가능한가?

"고전이 왜 필요한가? 아무리 악한 자들이 설쳐도 선은 결국 승리한다. 내가 말하는 것은 현실이지 당위가 아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는 죽은 사람들이 남긴 고전만을 가르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산 사람들의 고전을 남겨야 한다. 그리고 모든 정치적 리더십의 핵심에는 결국 기(氣)라는 우주의 생명력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그것을 우리는 성인(聖人)이라 불러왔다. 그 영원한 이상을 위해 인류는 지금도 노력 중이다."

◆구로즈미 마코토(黑住眞)=1950년 오카야마에서 출생하여 히로시마에서 컸다. 도쿄대 윤리학과에 입학해 동 대학원에서 박사과정까지 마치고 현재 도쿄대 윤리사상사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 이후의 일본사상사 연구에 일가를 이룬 사상가로서 사상 자체의 논리구조보다는 인간의 삶과 사회, 그리고 제도 속에서 사상을 폭넓게 연구해 왔다. 일본사상의 아시아 전체의 역사적 맥락을 중시한 '근세 일본 사회와 유교'(2003)는 획기적 저서로 평가되고 있다.

도올 김용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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