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오동 천년, 탄금 50년 23. 심상건, 스트라빈스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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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가야금 스승인 심상건 선생은 해학과 창조정신을 함께 전수해줬다.

천상 스트라빈스키였다. 심상건 선생은 키가 작은 편이지만 체구는 아주 탄탄해 보였다. 머리는 크고 목은 짧았으며 아주 강인해 보이는 것이 스트라빈스키와 흡사한 느낌을 줬다. 내가 실제로 심상건 선생에게 수업한 기간은 1년 정도 된다. 김윤덕 선생에게 정남희류 산조 한바탕을 다 배우고 나서 산조를 처음으로 들려줬던 산조의 명인 심 선생을 찾았다. 그때 나는 20세기의 러시아 작곡가 스트라빈스키를 떠올렸다.

심 선생은 정식 제자를 한 명도 두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매번 즉흥적으로 음악을 전수한 뒤 며칠만 지나면 자신도 그 가락을 잊어버리기로 유명했다. “심상건의 수업은 선생의 방을 나오는 순간부터가 진짜”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학생이 나간 뒤 심 선생은 편안한 마음으로 혼자 한 가락을 타는데, 그걸 그의 방에 딸린 창문 밑에서 엿듣는 게 진짜라는 것이다. 그는 또 술에 얼큰하게 취한 채 연주하기로 유명했다. “내가 한 번은 완전히 술에 취해서 연주하는 바람에 무엇을 연주했는지 알 수가 없었지. 그런데 공보부(문화관광부의 전신) 장관이 ‘오늘 선생님 연주가 유달리 좋았습니다’라고 하더군. 그래서 ‘장관님, 제가 무슨 연주를 한 줄 아십니까. 그저 주정을 했지요.’라고 했다네”라며 껄껄 웃던 모습도 떠오른다.

가야금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아주 유명한 “죄고 푸는 맛”이라는 말도 심 선생의 입에서 나왔다. “산조를 한평생 무슨 재미로 탔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는 것이다. 긴장과 이완의 대비, 현대 미학의 이론과 맞아 떨어지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또 “산조는 철학”이라는 말도 그가 남겼다. 어느 국악 관련 세미나에서 “산조란 무엇입니까”라고 한 대학 교수가 원론적인 질문을 던지자 이렇게 알 듯 모를 듯한 대답을 한 것이다. 나도 평생 가야금을 타면서 그의 말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무튼 심 선생은 익살과 해학으로 유명한 분이었다. 세종문화회관 전신인 서울 시민회관의 넓은 무대에서 그가 가야금 독주를 한 일이 있다. 심 선생이 연주를 끝내자 그를 비추던 둥그런 스포트라이트가 점점 작아지며 그의 머리에 작고 동그랗게 남았다. 그는 ‘완벽한’ 대머리였다. 심 선생은 자신의 머리에 보름달 모양의 조명이 생긴 걸 알았다. 순간 그는 손을 머리 위에 얹고 돌리는 시늉을 했다. 객석은 웃음바다가 됐다. ‘저 해학은 보통이 아니구나.’ 객석에 있던 나는 놀라면서도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또 연주 직전까지 입을 다물지 않았다. 심지어 녹음을 할 때도 말을 해야 했다. KBS의 녹음 기사들이 서울 운니동 국악원으로 찾아와 연주실에서 그의 연주를 녹음할 때 나도 그 옆에 있었다. 당시 70세를 넘겼던 그는 녹음기사들이 아무리 주의를 줘도 꼭 몇 마디부터 하는 바람에 녹음을 망쳤다. 녹음기사들은 결국 말을 하도록 놔둔 채 연주를 시작하는 순간 부랴부랴 녹음 버튼을 눌렀다. 지금 생각하면 그의 말 한마디도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심 선생의 해학과 파격은 현대인들이 잊고 사는 그 무엇은 아닐까.

황병기<가야금 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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