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가야금 스승인 심상건 선생은 해학과 창조정신을 함께 전수해줬다.
심 선생은 정식 제자를 한 명도 두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매번 즉흥적으로 음악을 전수한 뒤 며칠만 지나면 자신도 그 가락을 잊어버리기로 유명했다. “심상건의 수업은 선생의 방을 나오는 순간부터가 진짜”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학생이 나간 뒤 심 선생은 편안한 마음으로 혼자 한 가락을 타는데, 그걸 그의 방에 딸린 창문 밑에서 엿듣는 게 진짜라는 것이다. 그는 또 술에 얼큰하게 취한 채 연주하기로 유명했다. “내가 한 번은 완전히 술에 취해서 연주하는 바람에 무엇을 연주했는지 알 수가 없었지. 그런데 공보부(문화관광부의 전신) 장관이 ‘오늘 선생님 연주가 유달리 좋았습니다’라고 하더군. 그래서 ‘장관님, 제가 무슨 연주를 한 줄 아십니까. 그저 주정을 했지요.’라고 했다네”라며 껄껄 웃던 모습도 떠오른다.
가야금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아주 유명한 “죄고 푸는 맛”이라는 말도 심 선생의 입에서 나왔다. “산조를 한평생 무슨 재미로 탔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는 것이다. 긴장과 이완의 대비, 현대 미학의 이론과 맞아 떨어지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또 “산조는 철학”이라는 말도 그가 남겼다. 어느 국악 관련 세미나에서 “산조란 무엇입니까”라고 한 대학 교수가 원론적인 질문을 던지자 이렇게 알 듯 모를 듯한 대답을 한 것이다. 나도 평생 가야금을 타면서 그의 말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무튼 심 선생은 익살과 해학으로 유명한 분이었다. 세종문화회관 전신인 서울 시민회관의 넓은 무대에서 그가 가야금 독주를 한 일이 있다. 심 선생이 연주를 끝내자 그를 비추던 둥그런 스포트라이트가 점점 작아지며 그의 머리에 작고 동그랗게 남았다. 그는 ‘완벽한’ 대머리였다. 심 선생은 자신의 머리에 보름달 모양의 조명이 생긴 걸 알았다. 순간 그는 손을 머리 위에 얹고 돌리는 시늉을 했다. 객석은 웃음바다가 됐다. ‘저 해학은 보통이 아니구나.’ 객석에 있던 나는 놀라면서도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또 연주 직전까지 입을 다물지 않았다. 심지어 녹음을 할 때도 말을 해야 했다. KBS의 녹음 기사들이 서울 운니동 국악원으로 찾아와 연주실에서 그의 연주를 녹음할 때 나도 그 옆에 있었다. 당시 70세를 넘겼던 그는 녹음기사들이 아무리 주의를 줘도 꼭 몇 마디부터 하는 바람에 녹음을 망쳤다. 녹음기사들은 결국 말을 하도록 놔둔 채 연주를 시작하는 순간 부랴부랴 녹음 버튼을 눌렀다. 지금 생각하면 그의 말 한마디도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심 선생의 해학과 파격은 현대인들이 잊고 사는 그 무엇은 아닐까.
황병기<가야금 명인>가야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