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0분의 1' 꿰맞추기 위한 수사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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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삼성그룹이 2백20억원의 불법 대선자금을 한나라당에 추가로 제공했다고 검찰이 밝혔다. 이로써 삼성이 한나라당에 건넨 자금은 3백72억원이다. 불법으로 받은 대선자금이 더 이상 없다던 이회창 후보와 최병렬 대표의 고백은 거짓말이었던 셈이다. 한나라당이 지난 대선 때 모금한 돈은 도대체 얼마인가.

가장 많은 불법자금을 낸 것으로 드러난 삼성은 자기 반성과 함께 대국민 사과가 있어야 한다. 국내 제일, 브랜드 파워 세계 5위의 기업이라는 명예에 금이 갔다. 많은 국민은 "삼성까지도…"라며 실망하고 있다. 정치권에 돈을 건네준 삼성 관련자들은 수사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아울러 엄청난 정치자금을 건넨 사정과 그 돈을 마련한 과정, 일반주주에게 끼친 손해 등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검찰의 수사를 보면 한나라당 측이 5대그룹으로부터 받은 불법자금은 7백32억원대에 이른다. 반면 노무현 후보 측이 받은 돈은 한 푼도 없다. 과연 이들 대기업이 한나라당에만 돈을 주고 盧후보 측은 외면했을까.

한화와 금호그룹은 대선 막바지에 지지율이 치솟았던 盧후보 측에 각각 10억원과 7억원을 전달한 사실이 검찰 수사로 드러났다. 두 기업의 행태로 유추해 보면 5대그룹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런 점들이 검찰의 수사가 형평성을 잃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과거와는 달리 검찰은 국민적인 성원 속에서 대선자금을 수사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드러난 현실로 볼 때 과연 검찰 수사가 공정하게 진행되고 있는가라는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검찰이 혹시 盧대통령의 10분의 1 발언에 수사를 꿰맞추기 위해 숫자 놀음을 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검찰에 대한 국민의 믿음을 악용해 편파수사를 정당화하려 한다면 검찰은 엄청난 후폭풍을 맞게 된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역사는 길며, 진실은 결국 밝혀지기 때문이다. 검찰이 진정으로 사는 길은 권력에 초연해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는 법을 집행하는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명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