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과학칼럼

원리를 알면 세상이 보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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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아이들은 놀이동산에서 기구들을 타면서 “저 기구들이 어떻게 저렇게 움직일 수 있어요?” 하고 귀찮을 정도로 질문을 해댄다. 이때 아이들은 노하우(know-how)만을 묻는 것이 아니라 그 원리도 함께 묻고 있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노하우 열풍이 불고 있다. 이 열풍은 과학기술 분야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 불고 있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어떤 노하우를 짧은 시간 내에 스스로 알아내기란 매우 어렵다. 일단 노하우를 알게 되면 일시적으로 시간이 단축되고 능률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모두가 노하우에 목을 매게 되고, 때로는 국가 간에 산업스파이까지 동원된다.

노하우는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여러 사람의 창의적인 노력이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것이다. 노하우에는 반드시 과학적인 원리가 있다. 자연과학 분야는 물론이고 인문사회 및 경제·경영·예술 분야 역시 깊은 과학적 사고의 결과로 이룩된 것이다. 어떤 분야가 발전하려면 노하우뿐만 아니라 노와이(know-why)도 같이 알아야 한다. 노와이는 단순히 ‘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원리를 모르고 방법만을 아는 사람은 두세 배의 노력을 해도 창조적인 새로운 것을 기대할 수 없다. 서두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아이들의 호기심 어린 질문은 노하우와 노와이를 함께 묻고 있는 것이다. 꿈과 미래를 짊어질 어린이들에게 노하우뿐만 아니라 노와이도 동시에 가르치자.

사람들은 백이면 백 모두 자신의 노하우를 자랑하며 ‘열심히 하겠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쉽게 말한다. 물론 열심히 해야 하고 최선도 다해야 한다. 그러나 원리에 기반을 둔 깊은 안목과 폭넓은 배려 없이 무턱대고 열심히만 하는 것이 과연 좋은 방법인지 자문해 보자. 열심히만 하다 보면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 주변을 전후좌우, 상하로 둘러보며 살펴야 한다. 생각지 못했던 더 좋은 방법과 원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Don’t work too hard, do work smart!”, 즉 ‘무조건 열심히만 하지 말고, 지혜롭고 창조적으로 일을 하라’는 이 어구에 담긴 깊은 의미를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골프는 매우 과학적인 스포츠다. 골프보다 과학적인 원리가 더 많이 적용되는 스포츠는 아마 없을 것이다. 정교한 과학의 원리에 기반해 제작된 것이 골프클럽이고 공이다. 헤드의 모양에서부터 샤프트 구조와 그립의 형태가 그렇다. 또한 수많은 골퍼가 올바른 스윙 자세를 만들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스윙만 좋으면 되는가? 볼이 놓인 상태에 따라 스윙 자세는 또 달라져야 한다. 페어웨이에서도 고려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무슨 장애물이 그리도 많은지 골퍼들을 골탕 먹이려 하는 것 같다. 산 위에 모래사장과 물웅덩이는 왜 만들어 놓았는가? 또한 그린을 보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오르막·내리막에 이리저리 휘어지게 만들어져 있다. 골프장은 인간이 갖고 있는 신체적 특성과 심리적 장단점을 고스란히 반영해 과학적으로 설계된 것이다.

이래도 마이웨이만 고집할 것인가? 그러다가는 곧 한계에 부딪힐 것이다. 첨단과학의 길을 걷는 현대 골프에 걸맞게 별도의 연구소를 설립해 클럽과 공, 각종 장비를 과학적으로 연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과학에 기반을 둔 연구 없이 세계적 브랜드의 골프 장비는 한낱 허울 좋은 꿈일 것이다. 스윙의 과학적 분석과 멘털 게임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선수들의 경기력을 향상시키자. 또한 자신에게 맞지 않는 클럽을 들고 방황하는 수백만의 골퍼를 위해 클럽맞춤이 보편화되도록 하자. TV나 언론매체를 통한 골프 관련 프로그램에서도 스윙 방법과 더불어 과학적 원리의 내용도 보강하도록 하자.

이제는 골퍼들을 위한 한국형 골프 매뉴얼이 필요한 시기다. 원리를 알면 골프가 보이고, 골프가 보이면 세상도 보인다.

김선웅 고려대 교수·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