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동상이몽' 범여·한나라 이해 맞아떨어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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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비자금 특검법안이 22일 국회 법사위 소위를 통과한 것은 여야가 12월 대선을 염두에 둔 정치적 고려를 한 것이다. 특검법안은 당초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축하금'과 이회창 무소속 후보의 '대선잔금' 포함을 둘러싼 논란으로 통과 여부가 불투명했다. 하지만 이날 여야 합의로 전격 처리됐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가 함께 노 대통령과 이회창 무소속 후보 및 삼성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이회창 후보는 1997년과 2002년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였다.

한나라당은 특검법 통과에 계속 미적거리는 태도를 보이면 대선전에서 부패 대 반부패 전선에 포위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노 대통령 관련 당선축하금 내용이 포함됐는데도 특검을 계속 거부하면 "재벌 비호"란 비난 여론에 직면하게 될 것이란 얘기다. 여기에다 BBK 사건에 쏠리는 국민적 관심을 돌리는 효과도 노린 듯하다.

신당 등 비한나라 진영에선 부패 문제를 대선 이슈로 만들고, 반(反)부패 연대를 가시화하는 성과를 노렸다. 대선을 앞두고 연일 반부패를 거론하는 신당으로선 대선축하금을 제외하는 데는 부담을 느꼈다. 국민 사이에 '반노(反노무현)' 정서가 강한 상황도 고려한 모습이다. 국회 법사위에 따르면 22일 오전까지만 해도 여야 간 입장 차는 컸다고 한다.

한나라당은 2002년 대선자금과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축하금을 수사 대상에 반드시 넣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신당은 이를 반대했다. "당선축하금은 없다"는 청와대 입장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민노당 노회찬 의원이 "수사 범위와 관련해 여야 양측의 주장을 100% 포괄하는 법안을 만들자"고 제안해 상황이 급반전됐다.

이에 따라 양측이 제출한 두 개 법안의 모든 내용을 포괄하는 형태의 법안이 탄생했다.

국회 관계자는 합의 법안에 대해 "수사 대상이나 내용이 지나치게 포괄적이어서 수사가 가능할지 모르겠다"며 "두 개의 법안이 뭉뚱그려지면서 비빔밥처럼 돼 버렸다"고 말했다.

민노당 노회찬 의원은 97년부터 10년 동안의 비자금 조성 의혹이 수사 대상에 포함된 것과 관련해 "최근 삼성 비자금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가 97년 이후 삼성에 재직했기 때문에 그때부터 하면 되겠다 싶었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일부 위헌적 요소 재론해야"=안상수 원내대표 등 한나라당 지도부에선 23일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특검법안의 일부 내용을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특히 삼성그룹 지배권 승계를 위한 불법 상속 의혹 관련 부분이 수사 대상에 포함된 데 대해 "사유재산과 관련된 부분을 특별검사가 수사한다는 점은 위헌적인 요소가 있다"(안 원내대표)는 주장이 강하다.

안 원내대표는 "왜 그런 부분이 통째로 들어갔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한나라당은 23일 의원총회를 열어 최종적인 당론을 확정할 방침이다. 하지만 일단 당 내엔 "특검법안 합의 자체를 되돌리기는 힘들다"는 기류가 강하다.

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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