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외교의 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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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영어의「Diplomacy」(외교)는 그리스어의「Diploma」에서 유래한다.「접혀진 서류」라는 의미다.속주머니에 접어넣은은밀한 서신을 상징한다.
키신저「밀사(密使)외교」에 대한 반작용으로「공공(公共)외교(public diplomacy)」라는 말이 생겨났다.진전상황과서로간의 입장을 일반에 알려 여론의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외교다. 모양새로는 그만이지만 사후 책임추궁을 모 면키 위한「면책(免責)」의 저의도 숨어있다.레이건 정부이후 소위「글로벌 공공외교」는 미국(美國)외교정책의 한 골간을 이루고 있다.
北-美간 핵협상이 실무선에서 타결되자 미국관리들은 쾌재를 불렀다.특히 한국(韓國)정부의 합의내용 수락은 미국의「중요한 외교적 성취」로 의미가 들뜨고 있다.협상과정에서「한미공조체제」는모양새가 완벽했다.
미국의 갈루치대표는 미국언론에 굳게 입을 다문채 한국관리들에겐 진전상황을 꼬박꼬박 알렸다.그 결과 합의사항들이 한국관리들을 통해 서울에서 먼저 보도돼 워싱턴쪽이 당혹해하는 기현상도 벌어졌다.한국이 소외되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용의주 도한「외교쇼」였다.
북한은 처음부터 잃을것이 별로 없었다, 반면 미국은 제재수단에 한계를 느꼈다. 경제제재는 실효성도 문제였지만 중국은 반대,일본은 소극적이었다. 무력충돌의 경우 결과적으로는 이기지만 그과정이 문제였다.
귀가 맞지않는 게임의 구도속에 한국은 시종 단추 끼워가기식의정공법으로임했다. 장기전략의 부재는 곧 형식에의 집착이었다.
공산체제 붕괴로 독일통일이 굴러들어왔다고 잘못 믿는 일부 사고는 경계를 요한다. 독일통일은 어느 강대국도 원치 않았다.
동방정책이 30년 공을 들이고,통일외무장관 겐셔의 비전과 추진력이 거둔 수확이었다.
고르바초프가 새사고로 틈을 보일때 겐셔는 콜총리와 서방을 집요하게 설득시켜 기회로 활용했다. 총리를 팔고,서방을 팔아넘긴다는 오해도 그는 무릅썼다.
북한 핵의 타결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기회일수도 있다. 4강외교를 통한 분위기 조성과 함께 남북간에 신뢰를 쌓는 동족외교에의 돌파구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 이니셔티브는 이해관계의 산술평균을 넘어선 비전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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