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에서 식품업체 사장 된 김동남씨 “두부 한 모에 재활희망 담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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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에서 재기한 짜로사랑 김동남 대표가 21일 경기도 수원시 영화동 공장에서 두부 상자를 손에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박종근 기자]

경기도 수원에 있는 유기농 두부 제조업체 짜로사랑의 김동남(47) 대표에게 11월 21일은 뜻 깊은 날이다. 10년 전 이날 외환위기가 닥쳤기 때문이다. 그는 외환위기의 여파로 직장과 가정을 한꺼번에 잃고 노숙자가 된 적이 있다. 알코올중독에 빠져 공원에서 뒹굴며 먹고 자면서 ‘이대로 살다 끝내자’는 모진 마음마저 먹었다고 한다.

그러나 2002년 경기도의 노숙자 자활 프로그램으로 수원시 송죽동의 두부공장을 찾아가면서 인생이 달라졌다. 뼈를 깎는 노력으로 버틴 결과 5년 만에 노숙자에서 어엿한 중소기업 대표가 됐다. 8평 공간에 낡은 중고 기계를 갖다 놓은 초라한 두부공장은 이제 공장과 사무실을 합쳐 100평 규모로 성장했다. 외환위기 발생 이후 강산이 한 번 변하면서 김 대표는 굳센 의지로 자신의 삶을 변화시켰다.

◆절망에서 희망으로=외환위기가 닥치기 전 김 대표는 경기도 안산에서 아파트 관리인으로 일하며 아내·딸과 오순도순 사는 평범한 30대 가장이었다. 그러나 외환위기는 모든 것을 앗아갔다. 그는 일자리를 잃자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술을 마셔 중독이 됐고, 가족과도 헤어졌다. 결국 집을 나와 노숙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수원의 노숙자 쉼터인 ‘해뜨는 집’까지 흘러갔다. 이곳에서 다시 일을 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이렇게 지내지 말고 두부공장에 가서 살 길을 찾아 봅시다.”

그는 처음에는 거절했다.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다. 그냥 죽고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살면 가족에게 미안하고, 낳아준 부모님께 불효가 된다”는 말에 귀가 번쩍 띄었다.

곧바로 두부공장을 찾았다. 2002년 4월 수원희망자활후견기관이 마련한 자활 사업장이었다. 이 기관은 민간이 운영하지만 사업비는 경기도에서 지원한다.

“기술도, 자본도 없는 제가 두부 를 만든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애써 만든 두부는 도저히 내다팔 품질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판로도 없어 처음부터 어려웠다. 같이 일하던 두 사람은 “쓸데없는 짓”이라며 공장을 떠났다. 그렇지만 김 대표는 포기하지 않았다. 재래시장에서 두부 파는 할머니 같은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물어가며 겨우 두부 만드는 법을 배웠다.

고생 끝에 낙이라고 2003년이 되자 희망의 빛이 보였다. 천주교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에서 국산 유기농 콩을 공급받아 두부를 만들고, 생산량을 대부분 납품할 수 있게 됐다.

2005년 4월 드디어 ‘짜로사랑’(진짜로 우리 농산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란 뜻)이란 이름으로 독립했다. 공장 출범 만 5년이 되는 올 4월에는 영화동에 100평짜리 공간으로 확대 이전하고, 설비도 최신식으로 갖췄다.

◆저소득층 자활 공동체=짜로사랑에는 현재 김 대표를 포함해 6명이 자활의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직원은 대부분 기초생활보호 대상자였다. 김 대표는 지금도 월급을 한 푼도 받지 않고 공장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일을 한다.

“성공할 때까지 제 모든 것을 던질 각오입니다.”

초창기 하루 30모도 채 되지 않았던 두부 생산량은 현재 500모로 늘었다. 연간 3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짜로사랑은 경기도가 지원한 자활 사업장 중 최고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이 회사는 초기 3년간 경기도에서 공장 운영비와 인건비를 지원받았고, 올 초에는 3억원의 사업자금 대출도 받았다.

그러나 지자체의 지원이 있더라도 본인의 자활 노력이 없으면 허사다.

김 대표는 “ 이곳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고용해 당당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도록 만드는 게 내 임무”라고 말했다.

주정완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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