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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 선 '안네 프랑크 나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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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가 나치 독일을 피해 비밀 다락방에 숨어 지내던 시절에 위안을 얻었던 피신처 뒤 밤나무가 법정에 서게 됐다.

20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암스테르담 시 당국은 최근 150년이 된 이 나무가 곰팡이균과 이끼로 인해 몸통의 절반 이상이 썩어 자르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나무 보호론자들의 모임인 ‘나무 재단’이 다시 시 당국이 살릴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도록 요구하고 나섰다. 수목 재단측은 “이 나무는 자유의 상징”이라며 법원에 나무를 앞에 있는 안네 프랑크 박물관과 철 케이블로 연결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안네 프랑크 재단 이사장 한스 웨스트라는 “나무가 매해 100만 명씩 몰려드는 박물관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며 “원래 나무를 접붙이기 했던 나무로 교체하자”는 입장이다. 이에 최종 생존 여부는 법정에서 가려질 전망이다.

2차대전 당시 안네 프랑크가 가족과 함께 25개월간 숨어 살며 써놓은 일기에는 이 나무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한 대목들이 있다. 안네는 1944년 2월23일자에서 다음과 같이 써놓았다.

“거의 매일 아침 나는 다락으로 올라가 가슴 속의 답답한 공기를 토해낸다.내가 평소 즐겨 앉는 마루 바닥에서는 푸른 하늘과 벌거벗은 밤나무가 올려다 보인다.밤나무 가지에 맺힌 작은 빗방울들은 마치 은처럼 반짝이고 갈매기와 다른 새들도 보인다.”

“이것들이 존재하는 한 나는 살아남아 이들을 보게 될 것이고 이 햇빛과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이것들이 있는 한 나는 불행할 수 없다”

이토록 안네에게 위안을 주었던 이 밤나무의 나이는 이제 150년이나 됐으며 곰팡이균과 이끼로 인해 몸통의 절반 이상이 썩어 전문가들로 부터 소생 불능 판정을 이미 받았다.

안네프랑크 기념관과 인접한 카이저스그라흐트 188번지 부지의 소유주는 이 나무를 베어낼 수 있지만 지난주 나무에게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졌다.

전문가들의 진단에 따라 올 3월, 2년 안에 언제든지 소유주가 베어낼 수 있도록 허용했던 시 당국은 위트레흐트 시에 본부를 둔 네덜란드 수목위원회의 이의를 지난주 받아들여 마지막 소생 노력을 기울여 보도록 허용했다.

소유주는 수목위원회가 나무를 치료하고 버팀목을 대주는 구명 노력을 내년 1월1일 이전까지 시도해보도록 기다리는 데에 동의했다.

이 나무는 2005년 5월에 안정성을 보완하기위해 가지의 대부분이 잘렸으나 지난해 11월 안전성 문제가 있다는 판정을 다시 받은 뒤 결국 베어내도 좋다는 허가가 떨어졌다.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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