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환란 10년, 성장동력 다시 살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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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오늘은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지 꼭 10년이 되는 날이다. 당시는 외채를 갚을 외환이 없어 나라가 통째로 부도날 위기에 몰렸었다. 정부는 결국 IMF에 손을 내밀었고, 그 덕에 가까스로 국가 파산의 고비를 넘겼다. 그러나 그 대가로 이른바 IMF 신탁통치라고까지 일컬어지는 혹독한 구조조정과 개혁 프로그램을 이행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금융회사의 3분의 1이 문을 닫았고, 30대 기업의 절반 이상이 사라졌다. 주가와 집값은 폭락했고 거리에는 실업자가 넘쳐났다.

외환위기는 이렇게 우리 경제와 국민에게 가혹한 고통을 안겨줬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이 시련을 딛고 일어섰다. 불과 1년여 만에 IMF로부터 빌려온 구제금융을 다 갚을 정도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면서 환란의 질곡에서 거뜬히 탈출했다. 외환위기를 통해 우리 경제의 체질도 강화됐다. 살아남은 기업들의 재무건전성은 놀라울 만큼 개선됐고 이를 바탕으로 국제경쟁력 또한 높아졌다. 경제 각 부문의 비효율적인 관행들이 사라지고 새롭게 국제기준이 속속 도입됐다. 갖가지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는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재도약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그러나 외환위기 극복의 성공신화는 거기까지였다. 김대중 정부는 환란극복의 가시적 성과에 급급해 경제 재도약의 잠재력을 까먹었다. 방만한 통화정책과 무분별한 신용카드 발급으로 인해 신용카드대란을 불러온 것이다. 그 뒤를 이은 노무현 정부는 복지와 분배를 앞세운 섣부른 경제정책으로 성장의 동력을 소진했다. 온갖 규제로 기업의 투자 의욕을 꺾었다. 그 결과 양극화가 오히려 심화됐고 청년실업이 넘쳐났다. 외환위기를 넘어섰던 국민적 열기는 식은 지 오래고 경제는 활력을 잃었다. 이것이 외환위기 10년을 맞은 한국 경제의 자화상이다.

문제는 앞으로 10년이다. 과거 환란 극복의 무용담이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만들고 나라를 먹여살리지 못한다. 무엇보다 꺼져 버린 성장동력을 되살리는 일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