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노벨평화상의 逆說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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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알프레드 노벨이 왜 평화상만 따로 떼어 노르웨이에서 시상토록했는지 그 이유는 알 길이 없다.
그의 유언장에 『또 하나의 상은 국가간에 우애를 돈독히 한 사람에게 수여하라.
노르웨이 의회가 위촉하는 선정위원회가 선정해 시상토록하라 』고만 돼있다.
다이너마이트의 발명으로「전쟁산업」에 불을 댕긴 그가 평화상을제정한 것도 아이러니다.일생을 독신으로 지낸 노벨은 만년에 여비서로 만난 오스트리아의 폰 주트너 여사와 우정을 나눴고 그녀의「세계평화회의」추진에 감화를 받았다는 얘기도 있다.그녀는 1905년 평화상을 받았다.
노벨의 생전에 노르웨이는 스웨덴에 합병된 1개 연방이었고 분리독립운동이 활발했다.
1880년대 노르웨이 의회가 벌인 국제평화 중재활동을 노벨이높이 샀으리라는 유추(類推)도 있다.
평화상은 시대적 고뇌의 반증이었다.두차례 대전등으로 18번이나 수상자를 걸렀다.평화의 개념도「전쟁의 부재」에서「정의와 사랑과 인간 존엄의 질서」로 확대되고 있다.
뒤낭.슈바이처.테레사 수녀.사하로프.킹 목사등은「딱 떨어지는」선정이었다.반면「세기의 평화운동가」마하트마 간디가 평화상을 받지못한 것은 평화상 최대의 역설이었다.
현직 정치지도자들의 수상은 갈수록 논란을 불러온다.73년 키신저와 레둑토는「가장 인기없는 선정」이었다.남아프리카의 인종차별주의자 데 클레르크대통령이 작년에 만델라와 함께 평화상을 수상한 것도 일대 충격이었다.금년에 공동수상자로 P LO 아라파트의장의 선정 과정에서 내분이 일었다.테러를 수단으로 삼은 지도자에게 어떻게 평화상을 줄 수 있느냐는 이의(異議)제기였다.
시상당국은『평화추구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가진 이들을 제외하는것은 비현실적이다.시상에는 앞으로 더 잘해달라는 격려의 뜻이 더욱 크다』며 이해를 구한다.「천사」만이 평화상을 받던 시대는지났다는 함축이다.
83년 수상자인 폴란드의 바웬사는『아이를 실컷 두들겨 준 일이 있다.날짜를 따져보았더니 평화상을 받고난 직후였다』고 익살을 부린 적이 있다.
「평화를 위해 전쟁을 준비한다」고도 한다.힘의 작용과 반작용이 거듭되면서 어쩔 수 없이 균형을 이루는 상태를 평화로 규정하는「동태적 평화게임」이다.그 주역들이 상을 나눠 갖는 공동수상시대의 개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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