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랑>공해와 은행나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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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날씨가 차가워지면서 벌써 설악산에는 단풍이 들었다는 소식이 전해온다.내가 거처하는 가회동 행원정사에서 조계사로 오는 거리에는 은행나무 가로수가 있다.아직 곱게는 아니지만 약간씩 노란빛을 띠기 시작하는 것이 머지않아 단풍이 들 기미 다.아니 진작부터 은행알이 노란빛으로 익은 것을 볼 수 있다.아침에 길을나서면서 은행나무 아래를 지나가면 으레 은행알이 몇개 떨어져 있고,행인의 발에 밟혀 예의 그 구린내를 풍기고 있다.
은행나무는 괴목과 함께 오래 전부터 우리 민족이 아끼고 사랑하는 나무다.특히 절에는 오래 묵은 은행나무가 많다.그 중에도양평(楊平)의 용문사(龍門寺)은행나무가 유명하다.신라말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입산하면서 심은 나무라고 하니 족히 1천년이 넘은 나무다.이밖에도 5백~6백년 정도의 수령을 가진 나무는 많다.사찰 마당이나 마을 입구에 이렇게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능히 오랜 역사를 말해주는듯 해 고풍스러운 경관을 만든다.
그뿐 아니라 은행알은 매우 귀한 과실에 속한다.특히 근자에 은행잎과 은행알이 성인병을 예방하고 혈액순환에 특효가 있다고 해서 더욱 인기가 있다.그래서 독일 등지로 은행잎을 수출하기도하는 모양이다.거기다가 은행나무는 도심지의 공기 를 정화하는 능력이 여느 나무보다 뛰어나다고 한다.이렇게 보면 목재 또한 우수한 은행나무는 나무 전체가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고 해야 하겠다. 이런 은행나무도 서울의 공해에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은행잎과 은행알이 모두 중금속으로 오염되어 있다고 한다.세계에서 가장 약효가 우수한 은행나무를 가진 우리가 다시 세계에서 가장 오염된 은행나무를 가진 나라가 된 것은 아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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